문호사

울산종합일보 / 기사승인 : 2021-02-01 10:3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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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종합일보/신문-홍성조의 역사·문화이야기 93

▲ 문호사는 조선중기(1515~1599) 성리학자 이승증 선생의 서원 유적지로 충효정신을 널리 받들기 위해 제향하는 곳이다. 경주 첨성대 뒤편에 위치해 있으며, 충효정신의 소중한 가치를 일깨울수 있는 장소로 주말휴일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문호사는 조선중기(1515~1599) 성리학자인 관란 이승증 선생의 서원유적지로 선생의 충효정신을 널리 받들기위해 제향하는 곳이다.

이승증 선생은 신라 좌명공신인 휘 알평의 후손으로 중종10년(1515)에 경주부 중리에서 출생했으며 선생의 뛰어난 충효정신을 기려 세인들이 그가 살던 지명을 충효마을로 불렀다.

중종37년(1542)에 보문보를 막아내 한발에 대비한 공덕이 현재까지도 전해져오고 있으며 칭송을 아끼지 않고 있다.

명종13년(1558) 사마양시에 합격하고도 명리에 뜻이 없어 전후 일곱차례나 관작의 제수를 사양해 세칭 칠징사로 존칭되고, 오직 후학양성에만 전념했다.

선조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78세의 노령임에도 경산 자인에서 창의해 적진을 크게무찔렀다.

이어 대구지역 사림에 격문을 보내 무릇 선비는 충성과 효도가 있을뿐이니 어찌 나라가 이토록 위급한데 대구에 의기가 적연한가 하니 이를 본 대구, 청도 등의 선비들이 뒤따라 일어나 향토를 지키는데 함께했다.

선조32년(1599) 85세로 고종하니 나라에서 정려를 내리고, 사림은 사우를 지어 제향했다.

순조21년(1821)에 후손들은 선생의 유고를 모아 관란 이선생문집을 발간했다.

현재 이곳에는 선생의 유적인 문호사와 정효각 그리고 창의비가 있다.

이곳은 충효정신이 살아있는 교육적 유적지로 주말 휴일에는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참고문헌: 동경지, 삼강론, 여지승람, 경주읍지, 신라의얼, 경주공물지리지, 관란이선생문집

글 정리: 울산종합일보/신문 홍성조 발행인, 대표이사
사진: 김명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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