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의 시대

울산종합일보 / 기사승인 : 2020-08-20 09:5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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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종합일보 임동재 논설위원
▲ 울산종합일보 임동재 논설위원
코로나19 사태가 최악의 상황을 맞았을 때 시중에는 유동자금이 넘쳐났다. 소비가 줄고 경제가 바닥을 치면서 살기 어렵다고 아우성을 칠 때 막대한 현금이 갈 곳을 찾아 헤매고 있었던 것이다. 모두가 어렵다고 할 때 넘쳐난 현금은 어디에서 나왔고, 어디로 갔을까?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2분기 말 가계 부채가 1637조 원을 넘어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가계 대출이 증가한 원인은 주식담보대출과 주택담보대출이다. 

 

증권사가 투자자에게 빌려주는 신용공여는 29조8776억 원으로 8조 원 가까이 늘었다. 주택담보대출도 873조 원으로 15조 원 가량 늘었다. 결국 시중에 흘러나온 많은 돈은 빚을 내 주식과 부동산에 투자한 대출금이었던 것이다.


정부에서 집값 안정화를 위해 잇달아 부동산 대책들을 내놓았다. 집값은 국가에서 일괄 통제하지 않는 이상 잡기가 어렵다. 그렇다고 잡지 않을 수도 없다. 자고 일어나면 수천에서 억대로 올라가는 게 집값이기 때문이다.


한쪽에선 집값이 올라가 로또 맞은 기분이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하루가 다르게 올라가는 집값에 절망하며 살아간다. 부동산 투자(투기)가 근로 수익의 수십 배를 웃돌면서 근로 의욕을 잃은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열심히 일해 봐야 집 한 채 갖고 있는 사람 못 당하니 그럴 만도 하다.


우리나라의 작년 1인당 국민소득은 3만2115달러,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세계 12위에 올랐다. 올해는 코로나19 사태로 전 세계적인 경제 부진 속에서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은 줄어들 것으로 보이지만 GDP 순위는 9위로 올라설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적으로 잘 사는 나라로 꼽히는 우리나라의 국민들은 스스로 얼마나 잘 산다고 느낄까? 1인당 국민소득은 3만 달러를 넘어서면서 선진국 대열에 들어갈 정도이지만 국민 개개인은 그렇지 못하다. 국민들이 느끼는 체감경기는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소득 양극화는 심화되고, 중산층은 부유층이 아니라 오히려 빈곤층으로 추락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OECD국가 평균 근로시간보다 더 많은 일을 하면서도 주 52시간 시행 이후 일을 더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학생들의 학습 시간도 OECD국가 평균보다 월등히 높다.


'항상성의 원리'가 있다. 항상성이란, 무엇이든 부족한 것이나 지나친 것을 바로잡아서 일정한 상태를 유지시키고자 하는 특성을 말한다. 항상성의 원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핍이다. 결핍된 것을 만족시켜서 항상성을 유지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객관적인 지표로 보면 우리 사회는 더 이상 결핍의 시대를 살고 있지 않다. 

 

다만, 심리적으로 그렇지 않다고 여길 뿐이다.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는 이유는 행복하게 잘 살기 위해서다. 한편으론 아무리 열심히 일해서 돈을 모아도 평생 집 한 채 살 수 없는 현실에 절망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주식과 부동산에 열을 올리는 게 우리의 모습이다.
 

정부의 집값 안정을 위한 부동산 대책은 모두를 만족시키지 못하고 성공하기는 더욱 어렵다.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하는 것이 기본 욕구이기 때문이다. 최근의 가계 빚 규모가 소득에 비해 빠르게 증가하면서 가계 부채가 부실화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빚투(빚 내서 투자)’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물질적으로는 더 없이 풍족한 시대, 하지만 더 열심히 일하고 더 많이 가지려고 하면 할수록 우리의 결핍은 더 심해진다. 정부의 대책만으로는 절대 집값을 잡을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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