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3에 만난 어린 의뢰인

울산종합일보 / 기사승인 : 2019-06-24 09:3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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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종합일보 경민정 필진(울주군의회 의원)
▲ 경민정 울주군의회 의원
2018년 6.13 지방선거를 치르고 꼭 1년이 되던 지난 6월13일. 필자는 울주군 지역사회보장협의체 관계자 분들과 함께 영화를 한 편 보게 됐다.

제목은 ‘어린 의뢰인’. 이 영화는 2013년 8월 경북 칠곡에서 벌어진 아동학대 사건을 모티브로 제작된 작품으로, 이 사건이 계기가 돼 실제 아동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대한 특례법 통과에 큰 영향을 미친 바 있다.

영화의 내용은 이렇다.

어린 시절 친 엄마를 여의고 홀아버지와 살고 있는 남매는 매일매일 엄마의 얼굴을 상상하며 그림을 그린다.

하지만 아이들의 그림엔 얼굴 윤곽만 있을 뿐 눈 코 입이 없다. 아이들은 엄마를 기억할 수 없었다.

엄마를 잃고 홀로 두 아이를 키우느라 삶이 팍팍해져 버린 아빠가 낡은 앨범 속 엄마의 얼굴을 모두 도려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무관심한 냉대 속에서 어린 동생과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던 영화 속 주인공은 세상을 향해 이런 질문을 던진다.

‘엄마는 어떤 느낌이에요?’

하지만, 차마 따뜻했을 ‘엄마의 느낌’을 늘 상상 속에서만 공유했던 남매에게 갑작스레 등장한 엄마의 모습은 ‘학대와 폭력’ 그 자체였다.

어느 날 아버지가 데려온 새엄마는, ‘젓가락질을 잘 못해서, 잠을 자지 않아서, 말을 잘 안 들어서, 고집을 부려서’ 그리고 때로는 뚜렷한 이유 없이 아이들을 때렸으며 학대의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 어처구니없게도 ‘사랑해서’ 라는 변명을 늘어놓았다.

가해자인 계모가 표현하는 그 지극한 사랑 아래 꽃 같은 아이들은 새빨갛게 목이 졸렸고 세탁기에 들어가 돌려져야했으며 욕조 물에 머리를 쳐 박혀야 했다.

그렇게 매일 밤마다 무차별적인 학대를 당하고 온 몸에 멍이 들어 다음날 집 밖을 나설 때면 아이는 갈 곳이 없었다.

‘엄마가 몇 대 쥐어박은 것 가지고 경찰에 신고를 하다니... 요즘 애들 못 써’

나쁜 사람은 경찰에 신고하면 벌을 준다고 배웠지만 그들은 오히려 아이에게 가족을 신고했다는 죄책감을 심어주었고 학교선생님과 아동보호센터의 노력들은 법적 한계에 부딪쳐 아이를 현실에서 구해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열 살 소녀의 동생이 계모의 무자비한 발길질에 비참하게 죽던 날 계모는 소녀에게 말한다.
‘엄마는 널 절대 버리지 않을거야... 그러니 동생은 니가 죽였다고 말해라.’

계모의 강요에 의해 동생을 죽였다는 자백을 했던 소녀의 억울한 누명은 가까스로 벗겨지지만 어린 생명을 사망에 이르게 한 계모에게 세상이 내린 벌은 고작 징역 15년이었다.

동생을 잃은 10살 소녀가 어린 아픔을 치유하고 스스로 일어설 무렵 가해자는 출소를 해 소녀에게 어떤 악영향을 끼칠지 모르는 상황인 것이다.

그저 남의 일이라며 간과해왔던 이웃 어른들과 동생을 죽인 가해자에게 내려진 솜털처럼 가벼운 처벌.

동생을 하늘로 보낸 며칠 뒤 아이는 홀로 독백한다.

‘어른들은 믿으면 안 돼’

우리 울산광역시 울주군에도 지난 2013년 10월 계모의 상습적인 학대로 여아가 숨진 사건이 발생했었다.

피해 아동은 자신의 집에서 새엄마에게 고작 2000원을 가져가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로 친구들과의 소풍이 예정된 날 아침 머리와 가슴 등을 10차례 이상 맞아 숨진 채 발견됐다.

보건복지부와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4년 사이에 아동학대로 숨진 아이들은 112명에 이르며 집계되지 않은 것까지 합치면 그 수는 두 배 가까이 늘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11월 보건복지부 산하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이 발간한 ‘2017년 전국 아동학대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아동학대 사례 건수는 2017년 2만2367건으로, 2001년의 2105건에 비해 10배 이상 증가했고 부모가 가해자인 경우가 73.3%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부모가 겪은 가정폭력은 자녀에 대물림 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폭력 피해가 전혀 없는 사람과 비교해 폭력을 경험한 사람이 다시금 폭력을 행사한 비율이 3배 가까이 많았다는 점이 그 사실을 반증한다.

내 부모에게 사랑을 받고 또 다시 내 자녀에게 사랑을 전해 줄 수 있는 삶.

지극히 당연한 얘기지만 누군가에게는 마치 선택받은 특권처럼 여겨지는 부러운 일상이었던 것이다.

울주군의회 의원으로 취임한지 1년째를 맞이하던 지난 6월13일. 필자는 이 영화를 보며 만감이 교차했다.

무엇을 위해 봉사해야 할 것인가. 무엇을 위한 삶을 살 것인가.

‘어른들은 믿으면 안돼’ 라는 여린 소녀의 슬픈 절규가 어른들의 부끄러운 자화상으로 남아야만 하는 것인가.

과연 이것이 각 가정과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될 수 있을 것인가.

섬세한 제도적 장치로 어두운 삶의 이면을 밝혀 줄 수는 없는 것인가.

가수 양희은의 노래 ‘엄마가 딸에게’ 가사 중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내가 좀 더 좋은 엄마가 되지 못했던 걸 용서해줄 수 있겠니, 넌 나보다는 좋은 엄마가 되겠다고 약속해주겠니’

육아와 자녀양육에 관한 힘겨움에 아이에게 끝까지 관대하지 못했을 여느 엄마들의 그토록 흔한 시쳇말은 어느새, 현실을 살아내는 우리 모두에게 내려진 무거운 삶의 과제가 되어 버렸다.

울산종합일보 경민정 필진(울주군의회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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