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모악, 그 섬에 그가 있었네

조미정 기자 / 기사승인 : 2016-05-18 11:3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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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그리고 제주 <1> 호젓한 제주를 찾아서
▲ 그림 같은 이호테우해변을 걷다보면 남쪽바다일수록 바다색이 하늘과 닮아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해변의 상징인 빨강말, 하양말 등대는 비록 마주보지 않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하는 이야기를 다 알아들을 수 있다. 바람과 구름, 파도가 실어줄 것이므로.

5월의 제주는 푸르름으로 반짝였다. 신록이 눈부신 초록빛을 띄기 직전, 연두를 머금은 새색시 마냥 빛나는 설렘이 있었다. 제주를 그토록 많이 내려갔어도 철저히 나를 위한 코스를 단 한 번도 짜지 못했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해도 이번만큼은 온전히 자아를 위한 길을 걸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봄, 제주에서 길을 잃어도 좋았다.


착한 바다 이호테우해변 고즈넉한 풍경 압권
부모와 아이, 누구라도 좋을 신영영화박물관
목숨 바쳐 제주 사랑한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 그림같은 이호테우해변

# 같은 방향, 이호테우해변의 말등대
공항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이호테우해변. 이름이 예뻐서 제주에 내려가면 한번쯤 들러보려고 했던 곳이다. ‘이호동’과 ‘테우해변’이라는 이름이 해변 입구에 씌어져 있는데 이호동은 사람이름이 아니라 지명이름이다.


‘테우’는 육지와 가까운 바다에서 자리 돔을 잡거나 낚시질과 해초를 채취하기 위해 사용했던 통나무배를 일컫는다. 해변에 테우는 없지만 나무다리가 그림처럼 떠 있다. 해녀들의 숨비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해녀들이 물질을 마치고 물 밖으로 나와 가쁘게 내쉬는 숨소리에는 삶의 무게를 덜어낸 안도의 한숨이 있다. 나무다리가 생경하지만 제주의 삶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이 다리만큼 이호테우 해변을 고즈넉하게 만드는 것이 또 있을까.


이호테우 해변은 제주시내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해변으로 백사장의 경사가 완만하다. 야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해 야영장에는 벌써부터 텐트를 치고 밤을 지새우는 이른 피서객들이 보인다. 그림 같은 해변을 걷다보면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바다가 비취색을 띄는 것을 알 수 있다. 점점 하늘색과 닮아간다.


짙은 동해바다만 보다가 이곳의 바다를 보면 왠지 마음이 착해진다. 저 멀리 빨강말과 하양말 등대가 마주보지 않고 비슷한 방향으로 나란히 서 있다. 이호테우해변의 말등대는 비록 마주보지 않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하는 이야기를 바람과 구름, 파도소리가 전해줄 것이므로 하나도 서럽지 않다.


▲ 아이와 함께, 신영영화박물관

# 아이와 함께 가도 신영영화박물관
남제주군으로 차를 돌린다. 이곳에는 영화배우 신영균 씨가 세운 한국 최초의 영화박물관인 신영영화박물관이 있다. 1999년 문을 연 곳으로 자료와 유물을 단순히 전시하지 않고 관람객이 영화 속의 주인공이 되어 체험할 수 있도록 다양한 볼거리를 자랑한다.


1920년 이래 한국영화 발전에 공헌한 배우들을 기리는 명예의 전당, 주제별 공간으로 이뤄진 영화역사관, 우리에겐 생소한 각종 영화자료와 19세기 동영상 장치들도 볼 수 있다. 해안선을 따라 2km의 산책로를 꼭 걸어보고 싶었는데, 5월5일 어린이날과 겹쳐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산책로의 문이 단단히 잠겨 있었다. 영화박물관에서 거대한 영화 캐릭터들을 만난 막내는 물 만난 고기처럼 전시장을 날아다녔다. 영화박물관의 하얀 외관은 그리스 산토리니 해변에 있는 어느 집 같다. 에게 해의 바람대신 제주의 바람을 맞고 서 있는 것은 어른의 몫이고 그 잔디마당을 원 없이 뛰어다니는 것은 아이의 몫이다. 아이와 함께 가도 좋을 제주의 명소가 아닐 수 없다.


▲ 마음의 평화, 김영갑갤러리

#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마음의 평화
성산읍으로 발길을 돌리면 한 남자가 목숨을 바쳐 사랑한 제주의 참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두모악은 한라산의 옛 이름이다. 사진작가 고 김영갑 씨는 제주의 바람과 돌과 자연을 자신의 몸보다 사랑했다.


고인이 손수 꾸민 단층짜리 폐교는 돌과 나무들도 그윽한 자태를 뽐낸다. 오름을 사랑했던 그의 사진이 빚어낸 제주의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그는 2005년 5월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루게릭병으로 투병했다. 그의 고통이 고스란히 느껴지지만 두모악은 고통을 하소연하지 않는다. 갤러리를 찾아온 모든이에게 마음의 평화를 안겨준다. 제주의 바람과 오름, 들판과 바다 누구나 볼 수 있던 제주의 모습을 누구나의 시선이 아닌 그만의 눈으로 탄생시켰다.

두모악의 마당을 걷거나 돌난간에 앉아 쉬고 있는 이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외진 곳이 이렇게 사람들의 발길을 사로잡는 이유는 그의 이야기가 뿜어내는 저력 때문이다. 두모악은 꼬불꼬불한 제주 시골마을을 한참이나 달린다. 시끌벅적한 여느 제주의 관광지와는 천지차이다. 갤러리 바로 앞 카페 ‘오름’에는 매우 느리지만 정성이 가득한 흑돼지 돈까스와 칼칼함이 기가 막힌 마파두부밥을 먹을 수 있다. 슬로우 푸드라 생각하고 예쁘게 꾸며진 카페와 마당을 둘러보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다. 돌아와서 제주 사진을 정리하다가 김영갑 씨의 작품이 들어있는 엽서사진을 물끄러미 보았다. 너무 아름다워서 쓸쓸한 사진이 눈앞에 놓여있었다. 제주가 그리워지면 또다시 그 마당을 거닐고 싶어질지도 모르겠다.

글·사진=조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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