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고도 가까운 오묘한 나라, 일본

조미정 기자 / 기사승인 : 2016-03-23 10: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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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보다 가까웠던 그곳
▲ 그림같은 ‘긴린코 호수’ 호수 바닥에서 차가운 지하수와 뜨거운 온천수가 동시에 흘러나오는 곳으로 이른 아침에는 자욱한 물안개가 피어 환상적이다. ‘란퓨샤’라는 레스토랑이 호수 한가운데 유유히 떠 있다.

김해공항에서 비행기를 타면 일본 후쿠오카 공항까지 딱 45분이 걸린다. 어쩌면 제주도보다 더 가까운 시간에 일본에 다다를 수 있으니 가까운 나라가 맞고, 역사적인 간극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먼 나라이기도 한 곳이 바로 일본이다. 그렇게 자발적 여행을 선택하지 않다가 규슈를 2박 3일 동안 짧게, 그것도 케어 할 가족 없이 다녀올 수 있는 하늘의 기회가 생기기도 한다. 오래 살고 볼 일이고, 여행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무채색의 히타시, 비바람 치던 온천욕장의 기억
그림 같은 ‘긴린코’, 동화 같던 유후인 민예품거리
“온천이라는 축복, 지진 화산의 비극 접목한 나라”


# ‘ 일기일회’ 한 번 보는 손님에게 최선
규슈에는 크고 작은 료칸들이 밀집해 있다. 진짜 고급 료칸은 가격대가 매우 높고 혼자 여행오면서 그렇게 럭셔리한 숙소를 잡을 수 없는 관계로 료칸형 호텔을 잡았다. 산요칸이라는 곳은 정갈하고 깨끗하며 무엇보다 호텔 관계자들이 말할 수 없이 친절했다.


일본 만화영화에서나 봤던 다다미방에 처음 발을 내딛었다. 방문을 열면 아주 좋은 향이 나는데 짚으로 만든 왕골, 돗자리의 향이라는 걸 알았다. 이미 침대시트 보다 두꺼운 요가 안락하게 깔려있었다. 엄숙한 분위기에서 차를 음미하는 일본의 다도가 호텔방에도 느껴진다.


‘일기일회(一期一會),주인은 손님에 대해 손님은 주인에 대해 일생에 한 번밖에 만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성의를 다하는 것’ 그 정신이 하룻밤 료칸에도 담겨있다. 산요칸에 도착하자마자 먹은 선상식은 국내에서 먹던 일식보다 비릿한 독특함이 있었다. 우리의 일식 코스는 한국 사람의 입맛에 맞춰 변형된 게 아닌가 싶었다. 먹는 사람도 준비하는 사람도 굉장히 예의를 갖춰, 저녁 한 끼를 먹는데도 혼신의 정성이 느껴진다.


▲ 료칸형 호텔 ‘산요칸’에서 내려다본 무채색의 일본은 생경한 느낌이다.

# 무채색의 히타시, 인상적인 새벽
유카타(개량 기모노)를 입고 산요칸의 온천으로 발길을 돌린다. 남녀탕이 구분돼 있는 온천은 다음날 아침, 음양의 기운을 섞기 위해 좌우가 바뀐다. 비바람이 부는 노천탕에서 하루아침에 나라가 바뀐 하늘의 별을 쳐다본다. 머리는 차갑고 가슴은 뜨거운 노천탕의 첫인상은 온천물과 함께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다음날 새벽, 산요칸에서 내려다본 무채색의 일본은 무척이나 낯설었다. 일본의 가옥들이 저토록 무채색인 이유는 바람, 온도, 습기 때문에 색을 입히면 죄다 벗겨지기 때문에 처음부터 무채색으로 도색했기 때문이다. 오히타현의 서부에 위치한 히타시는 산들에 둘러싸여 있는 전형적인 분지로 많은 하천이 흘러 들어오는 곳이다.


에도시대 때는 막부의 직할 영지로 규슈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 번창했다고 한다. 산요칸의 아침식사는 일본식과 서양식이 함께 있는 뷔페였는데 선상식보다 오히려 한국인들의 입맛에 더 맞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산요칸의 직원들은 조용하고 친절해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어 줬다. 손을 먼저 내리면 미안할 정도로 열심히 손을 흔들어줬고 일본의 첫인상에 얼어있던 마음이 조금은 녹는 듯 했다.


# 동화 마을 같은 유후인의 풍경
동화같은 마을 유후인의 긴린코 호수로 걸음을 옮겼다. 유후인은 벳푸, 구사쓰에 이어서 일본에서 3번째로 용출량이 많은 온천이다. 가격대가 천차만별인 료칸이 즐비한 곳으로 일본 정재계 인사의 별장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요즘은 우리나라 젊은 가족이나 여성들의 온천여행으로 손꼽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림같이 놓여있는 긴린코 호수는 잉어가 뛰어오를 때 그 비늘이 금색으로 보인다고 해서 긴린코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호수 바닥에서 차가운 지하수와 뜨거운 온천수가 동시에 흘러나오는 곳으로 이른 아침에는 자욱한 물안개가 피어 환상적이라고. 안개가 낀 흐린 날의 호수도 운치가 있었다.


호수 가운데는 ‘란퓨샤’라는 유명한 레스토랑이 유유히 떠 있다. 긴린코 호수 저편에서 샤갈미술관이 슬쩍 보인다. 프랑스에 갔을 때 니스에 있는 '국립 마르크 샤갈 미술관'을 가보지 못했다. 일본 유후인에서 샤갈을 만나게 될지 또 어떻게 알았겠는가. 꿈과 같은 몽롱한 그의 작품 세계를 잠깐이나마 맛볼 수 있는 것도 매력적인 일이다. 20세기를 대표하는 러시아 화가, 마르크 샤갈(Marc Chagall). 그는 어느 한 유파에 고착되지 않고 자신만의 화풍을 만들어 낸 화가이다. 유심히 살펴보니 유후인의 미술작품들은 유채화와 판화 작품이다. 특히 서커스를 주제로 한 독특한 작품세계와 기묘한 색채가 여전하다. ​


미술관 1층에는 샤갈과 관련한 아기자기한 소품을 전시, 판매하고 바로 옆에는 카페 '라루쉐'가 있다. 커피와 롤 케잌을 먹으며 시간을 보내기 딱 좋은 장소이다.


▲ 아기자기한 일본의 민예품이 종류별로 들어서 있는 유후인 민예품거리.

# 만화 속 배경, 유후인 민예품거리
아기자기한 일본의 민예품이 종류별로 들어서 있는 유후인 민예품거리. 일본 분위기가 물씬 난다. 먹을거리도 한 가득이다. ‘비스피크’라 불리는 롤 케잌 전문점에는 줄이 어디까지 늘어서 있다.


각 나라 유명 관광지의 먹을거리들이 유명세를 따라오지 못한 경우가 많은데 일본의 간식들은 이상하게도 입맛에 맞다. 달고 부드럽고 식감이 뛰어나다. 많은 사람들이 유후인을 걷고 있다.


거리 곳곳에 시선이 가는 곳이 많다. 수많은 관광객의 발길을 잡으면서도 친절함을 잃지 않았다. 가격 바가지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고 어디든 편한 마음으로 둘러볼 수 있다. 유명한 아이스크림과 금상고로케까지 미션 완료.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치히로가 된 기분이다.


유후인에도 수많은 관광객들이 물밀듯이 들어오고 있다. 우리가 김밥 한줄에 1만원의 바가지를 씌우고, 요란하고 정성빠진 메뉴를 턱없이 비싼 값에 팔거나 타국의 관광객에게 과도한 택시요금을 물리는 상혼을 계속 부린다면 중국 관광객의 발길은 어느새 일본으로 향하고 말 것이다. 나는 이날 유후인에서 일본이 타국의 관광객에 대처하는 자세를 본다. 그들은 눈만 마주쳐도 미소 짓고 목례를 하며, 밝은 목소리로 응대한다. 사진만 찍고 물건을 사지 않아도 친절을 잃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의 과잉 친절에 익숙하지 않은 건 외국인이다.


# 유노하나 유황과 히가시시야노 폭포
유노하나는 유황 온천수를 증발시켜 만든 것으로 ‘유황의 꽃’이라고 불린다. 15세기 후반, 에도 시대부터 유노하나가 재배됐는데 지금도 이렇게 옛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삼각형의 긴 초가지붕으로 된 유노하나 재배 가옥들이 쭉 늘어서 있다. 유노하나 유황은 천연 입욕제로 쓰이며 피로 회복과 피부미용 등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유황을 눈앞에 목격하고 잘 쪄진 계란을 부셔먹은 후 히가시시야노 폭포로 향한다. 87미터 높이의 히가시시야노 폭포는 오래 시간에 걸쳐 형성된 우거진 원시림이다. 아바타의 초록섬이 생각나는 비주얼이다. 일본의 자원이 우리와 조금 다를지 몰라도 사람이 사는 방식은 다 비슷비슷하다.


일본의 자원은 온천이라는 축복과 지진과 화산이라는 비극을 동시에 가져다줬다. 그들은 그들만의 방식대로 비극을 관광자원화 하는 방법을 터득했고 특유의 친절함과 깔끔함은 전 세계인을 섬으로 불러 모으는 오묘한 저력이 되었다. 일본을 한 번 갔던 이들이 또 가겠다고 하는 데는 생각보다 많은 이유가 있는 듯하다.
<2편에서 계속>


글·사진=조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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