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육아 전성시대’… 할머니는 괴롭다

김종윤 기자 / 기사승인 : 2014-12-17 15:5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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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육아 급증
엄마보다는 할마를 찾는 아이들 맞벌이 부부의 증가로 조부모가 손주를 돌보는 황혼육아가 급증하면서 ‘할빠’, ‘할마’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여성취업자의 증가로 인해 맞벌이 부부가 우리나라 가정의 절반(250만)가량을 차지하면서 은퇴 후 삶의 여유를 즐겨야 하는 60~70대, 즉 베이비부머 세대들의 ‘황혼육아’가 급증하고 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손주지만 강도 높은 육체적·정신적 노동이 요구되는 육아에 할머니·할아버지들은 손목터널 증후군, 허리디스크, 관절염 등 각종 질병과 부상위험성에 시달리고 있다. ‘선택’이 아닌 ‘필수’ 되어버린 황혼육아, 이제는 근본적인 양육지원서비스의 변화가 필요해 보인다.


맞벌이 부부 절반 넘어, 조부모 육아세대 급증
심리적·경제적 부담 크지만 “자식 위해서라면”
‘건강한 황혼육아’ 위한 양육지원서비스 절실


‘할빠’, ‘할마’ 신조어까지 등장
“눈에 넣어도 안 아플 3살, 5살 두 외손주를 돌보고 있는 김모(62) 할머니는 요즘들어 몸과 마음이 힘들고 지친다. 맞벌이 하는 딸의 임신과 함께 시작된 육아가 길어지다 보니 안 아픈 곳이 없을 정도다. 딸이 회사에서 회식이라도 한다고 예정시간보다 귀가가 늦으면 화가 나지만, 열 번 잘해주다가 한 번 다그치기라도 하면 난리가 나기 때문에 속으로 참기만 한다. 특히 아이들의 작은 문제로 자신을 원망하는 느낌이 들 때면 서운한 감정에 눈물이 핑 돈다”


“이모(66) 할아버지의 하루일과는 6살 손녀를 유치원차에 태워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손녀와 손잡고 차량을 기다리는 시간이 할아버지에게는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봄·여름·가을·겨울 변화하는 날씨와 함께 쑥쑥자라는 아이가 고맙고 사랑스럽기만 하다. 퇴직 후 상실감과 무료감에서 벗어나지 못한 그에게 손녀와의 시간은 자신이 가족에게 여전히 필요하다는 존재감과 함께 행복함이 넘치는 시간이다”


워킹망의 증가와 함께 급증하고 있는 조부모들의 ‘황혼육아’가 새로운 형태의 가족모델로 빠르게 자리잡으면서 ‘할빠(할아버지+아빠)’나 ‘할마(할머니+엄마)’와 같은 신조어도 등장했다.


이에 따라 취업여성의 출산이 조부모의 조력가능여부가 중요한 결정요인이 되고 있고, 세대갈등을 줄여준다는 긍정적인 부문과 함께 ‘손주병’을 앓는 할머니들이 증가하는 등의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


▲ 육체적·정신적으로 쉽지만은 않은 육아지만 대부분의 조부모들이 자식의 미래를 위해 황혼육아를 받아들이고 있다.

황혼육아, 허리 휘지만 보람도 커
울산지역의 경우 대부분 할머니들이 육아를 담당하는 경우가 많았고, 같이 살지 않더라도 자녀들의 안정적인 가정생활을 위해 관절염 등의 고통을 감수하면서도 손주를 키우는 것으로 나타났다.


울산시노인복지관이 60세 이상 어르신 5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울산지역 어르신 황혼육아 실태 및 욕구조사’에 따르면 대부분의 육아가 여성의 몫이라는 인식 때문인지 10명 중 9명의 할머니가 손주를 주로 돌보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가족형태로는 부부세대 51%, 자녀·손자녀와 동거 22.4%, 독거 12%, 자녀와 동거 10%, 손자녀와 동거 4.6% 순으로 나타났다. 이는 어르신들이 자녀들과 함께 살지 않더라고 손주를 돌보는 것으로 보인다.


양육기간의 경우 손주들이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인 7년 미만이 60% 이상을 차지했으며, 대부분 일주일 중 5일을 아이들을 돌보는데 공을 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황혼의 육아가 쉽지만은 않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응답자의 34.5%가 고혈압을 호소했고, 20% 가량은 어린손주를 업거나 재우면서 관절염이 악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30%가량은 육아를 대신하며 돌보는 시간, 자녀와의 소통 부족 등으로 자녀들과 갈등을 빚은 적이 있었다.


그래도 대부분이 아이를 돌보는 것에 긍정적으로 답했다.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나지만 80% 이상의 할머니·할아버지가 자녀들의 경제적 안정 등 미래를 위해 손주를 돌보는 것에 만족했다. 손주를 돌보며 가장 좋은 점은 손주들이 너무 귀엽고, 삶의 에너지가 된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좋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황혼육아가 힘들다는 응답자들도 건강상의 이유가 가장 많아 체력만 따라 준다면 자녀 혹은 손주를 위해 희생할 수 있다는 ‘내리사랑’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맞춤형 조부모 프로그램 마련돼야
직장과 가정생활을 병행하는 자녀가 안쓰러워 손주를 떠맡으면서 시작되는 실버세대의 ‘황혼육아’는 단기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어서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황혼육아에 대처하는 정부나 지자체의 움직임은 더디기만 하다. 특히 황혼육아 문제가 ‘출산’ 및 ‘노인’ 문제와 복합적으로 얽혀있다 보니 전담부서가 불분명한 것도 대책 마련에 소홀한 이유로 꼽히고 있다.


전문가들은 “사회적으로 아이들을 보육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다 보니 노년을 즐겨야 할 부모세대들에게 다시 육아에 대한 부담감이 전이되고 부모와 자식의 유대감이 낮아지는 결과까지 초래하고 있다”며 “특히 황혼육아로 인해 생기는 가족 내 갈등과 아이의 애정결핍 우려 역시 사회적 문제로 야기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울산시노인복지관 등 노인관련 기관에서 어르신들의 황혼육아를 돕기 위해 찾아가는 노인상담 프로그램 개발, 지역과 연계한 프로그램 개발, 정부 차원의 양육지원서비스 제공 등을 고심하고 있지만 아직 가시적인 성과가 나온 것은 없다.
울산시노인복지관 유애희 복지사는 “황혼육아가 사회적인 이슈로 대두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사회적 시스템은 미흡한 것이 사실”이라며 “어르신들이 육체적·정신적으로 힘들지 않으면서 육아를 하기 위해선 상담서비스 지원, 노후시간 활용법 안내 등의 다양한 해결책이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종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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