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떠나는 언덕에 홀연히 서다

조미정 기자 / 기사승인 : 2013-11-27 15: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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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양동마을

두툼한 외투로 목을 감싸도 쏴한 초겨울 바람은 코끝을 에인다. 똬리 튼 고민들이 찬바람에 결빙되는 기분은 그래도 나쁘지 않다. 애써 떨쳐버리려 노력하지 않아도, 머릿속을 털어내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겨울은 그렇게 느닷없이 일상을 파고들고 우린 머지않아 추운 겨울이 다시 일상이 되는 시간을 맞게 된다. 매 순간이 과거가 되고 있는 현실에서 어디론가 훌쩍 떠나는 것은 현재를 멋진 과거로 남기고 싶은 바람 때문은 아닐까.

보편적 감성을 자극하는 한옥의 고즈넉한 매력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존재만으로도 아름다워
양동마을 걷기, 호젓한 일상의 여유이자 ‘선물’


#경주 손씨와 여강 이씨의 양반 가옥 보존
경주를 숱하게 오고가면서도 양동마을을 더 일찍 들르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많은 블로거와 매체에서 양동마을에 대한 사진과 글들을 봐왔고 어떤 곳인지 꼭 한 번은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버킷리스트는 인생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울산에서 1시간 10여 분만에 도착한 양동마을은 지리적으로 형산강의 풍부한 물을 바탕으로 한 넓은 안강 평야가 펼쳐져 있는 곳이다. 먼저 깨끗하게 정비된 주차장부터 정갈했다.

입구엔 전시관이 먼저 방문객을 맞았고 총 96만9115㎡ 면적에 이르는 마을에 대한 개요들이 아낌없이 설명돼 있었다. 소장 문화유산을 한곳에 모아 관리하기 위해 2011년 유물전시관이 건립됐다고 한다.

미니어처를 보며 돌아봐야 할 양동마을의 구석구석을 떠올리는 것도 쏠쏠한 재미다. 양동마을은 경주 손 씨와 여강 이 씨 두 가문이 약 500여 년 간의 대를 이어서 현재까지 살고 있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전통마을로 지난 2010년 7월31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양반 가옥들이 집단을 이루고 있으며 종가일수록 높고 넓은 산등성이 터에 집을 배열하고 있다. 오랜 역사를 지닌 큰 집들이 잘 보존돼 있는 것도 놀랍다. 특히 마을 주민들이 여전히 거주하고 있어 일부 건물은 소유자 등의 사정에 따라 개방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성주산에 올라 내려다보는 겨울, 진품
매표소에서 4000원짜리 입장료를 구입하고 탐방길 안내도를 챙기는 것은 필수다. 안내도를 펼치면 총 7코스로 나눠져 있다.

탐방1길은 하촌방면으로 마을 입구에서 안락정→이향정→강학당→심수정까지 약 20분이 소요되는 입구마을이다.
탐방2길은 물봉골 방면으로 양동마을의 규모와 정취가 한눈에 들어오는 코스로 무첨당→대성헌→물봉고개→물봉동산→영귀정→설천정사까지 약 1시간이 소요된다.
탐방3길은 수졸당 방면으로 그림같은 모습의 가옥들이 주는 옛것의 멋스러움이 살아있으며 경산서당→육위정→안골동산→수졸당→양종정에 이르는 30분짜리 코스이다.
탐방4길은 안골방면으로 안채와 사랑채가 분리된 독특한 구조의 가옥들을 만나볼 수 있다. 근암고택→상춘헌→사호당→서백당→낙선당→창은정사→내곡정에 이르는 1시간 코스이다.
탐방5길은 두곡방면으로 두곡 이조원 공과 그 후손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으며 두곡고택→영당→동호정에 이르는 30분 코스이다.
탐방6길은 향단 방면으로 곳곳에 서려있는 조선조 청백리들의 기상을 느낄 수 있으며 정충비각→향단→관가정→수운정에 이르며 1시간이 소요된다.
마지막 탐방6길은 양동마을을 대표하는 가옥들로 서백당→무첨당→향단→관가정에 이르는 2시간 코스이다. 마을 전체를 꼼꼼하게 돌아보는 것은 꽤 많은 시간이 걸린다.

여기저기 코스안내도를 들고 가고 싶은 곳을 찾아가는 재미가 있고, 홀로 카메라를 든 채 미친 듯이 셔터를 눌러대는 많은 사진작가들을 마주치는 곳도 바로 이곳이다. 촬영 삼매경에 빠져있는 그들을 찍는 것도 아름답다. 많이 돌아다니는 듯해도 처음에 이 마을을 찾는 일반인들이 보고 가는 것은 실제 양동마을의 25% 정도에 불과하다고 한다.

항아리처럼 좁은 입구에서 뒤로 갈수록 넓어지는 모양으로 마을을 대충 둘러본다고 해도 반나절은 족히 걸린다. 마을의 전체적인 모습을 보려면 성주산에 올라가는 것이 가장 좋고 특히 나뭇잎이 다 떨어진 겨울철이면 그 운치가 더한다고 한다. 아직 완전한 겨울이 오려면 일말의 시간이 남아있다.

#탁월한 자연경관, 한국문화의 축소판
큰 도로에서 10여 분 걸으면 왼쪽으로 안락천이 흐르고 있는데 이곳은 형산강, 안락천, 기계천이 합류되는 지점으로, 풍수에 따르면 합수지역은 부를 상징한다고 한다.

이 마을도 이러한 풍수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많은 인재와 부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마을 구석구석이 예사롭지 않다. 500년 전통과 탁월한 자연경관을 갖춘 양동마을이 한국문화의 축소판이라 불리는 이유다.

게다가 지금도 주민들이 세대를 이어가며 삶을 꾸리고 있는 생활공간으로 손색이 없다. 마을 안의 문화재도 수두룩하다. 관가정·무첨당·서백당 등 건축물은 물론 많은 기록물까지 가히 문화유산의 보고이다.

보통 세계유산으로 지정되면 국제적인 관광명소로 떠오르면서 훼손이 가속화되는 위기에 처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양동마을의 고즈넉함과 여유로움은 일단 극성 관광객들을 다독거리는 묘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 매력은 손길, 발길 닿는데마다 숨어있는 한옥의 매력 때문이다.

한옥을 쳐다보고 있을라치면 내가 ‘한국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뭔가 보편적인 감성을 자극하는 요소가 있다. 처마 밑에 걸려있는 메주덩어리를 보고 셔터를 눌러대고 텃밭의 김장배추에 눈이 가고 지붕의 선 하나하나가 눈에 섬세하게 들어오면 뭐랄까. 감성이 은은한 파도를 타는 기분이랄까. 그래서 카메라를 둘러매고 혼자 양동마을 구석구석을 뒤지고 있는 사진작가들이 낯설지가 않다.

그들은 한옥을 찍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한옥에 매료된 자신의 감정 선을 담고 있는 것이다. 은행 나뭇잎이 다 떨어진 언덕에서 양동마을을 내려다보고 서 있으면 맞추던 카메라 앵글이 스르르 내려온다. 카메라가 무거웠던 것이 아니고 그동안 무거운 것을 어깨에 매달며 살아온 짐들을 잠시 내려놓고 싶었던 게다. 찬바람이 부는 겨울이면 더 좋다. 양동마을 걷기는 스스로에게 선물하는 호젓한 일상의 여유이다.

글·사진= 조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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