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진객들이 펼치는 유혹의 춤사위

조창훈 / 기사승인 : 2013-11-20 17: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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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주남저수지’

평소보다 일찍 침대에 누웠지만 쉽사리 잠들지 못했다. 오랜만의 여행에 설레어 하고 있었던 건지 일찍 자야한다는 압박 때문이었는지 모르겠지만 훨씬 늦게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알람에 잠을 깨 10분만 더 잔다는 게 30분을 넘게 자 버렸다. 친구와의 약속시간을 맞추기 위해 최대한 빨리 준비를 해서 집을 나섰다. 아뿔싸! 갑자기 추워진 날씨를 생각 못했다. 두꺼운 외투를 챙긴다는 걸 깜빡했다. 10층인 집이 원망스러워진다. 아침부터 무슨 일인지 15층에서 엘리베이터가 멈춰서 내려올 줄 모른다. 계단으로 뛰어 올라갔다가 다시 계단으로 내려 뛰어왔다. 숨이 턱까지 찬다. 그런데 차에 타고 보니 오히려 아침부터 10층을 왕복해 덥기만 하다. 울산에서 창원까지는 2시간이다. 2시간 뒤면 아침처럼 춥지 않을 거다. 외투? 가져오지 않았어도 상관없었다는 말이다. 그날 오랜만의 여행이라 그런지 마음은 바빴지만 아침부터 서툴기만 했다.

무명의 자연 늪에서 동양 최대 철새도래지 주목
10월부터 찾아오는 겨울철새 100여 종 이상
‘계절임차 농제도’ 사람과 철새 공존 방법 제시
12월7~9일 ‘주남저수지 철새축제’ 개최


#무명의 자연 늪, 철새와 만나다
오랜 옛날부터 경남 창원시 의창구 동읍과 대산면에 필요한 농업용수를 공급해주던 자연늪이 있었다. 3개의 저수지가 있었는데 이름도 쉽게 마을 이름을 따서 산남 늪, 용산 늪, 가월 늪이라 불렀다. 인근주민에게 계절마다 민물새우, 민물조개, 민물고기와 같은 먹을거리와 갈대, 억새와 같은 땔감을 제공하는 등 혜택을 주면서 함께 살아가고 있었지만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하는 거대 저수지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 자연 늪의 운명은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에 가창오리 등 수 만 마리가 도래해 월동하면서 확 바뀌었다. 현재는 람사르협약의 등록습지 기준에 상회하는 동양 최대의 철새도래지로 사랑받고 있으며, 특히 두루미류의 중간 기착지 및 재두루미의 월동지로서 사랑받고 있다. 이 자연 늪은 바로 창원의 ‘주남저수지’이다.

입동이 지난지 얼마 안 된 11월 중순의 어느 날 울산에서 2시간을 달려 도착한 창원 ‘주남저수지’는 아직 가을의 모습이 완연했다. 늪 주위에 자라고 있는 물억새와 갈대의 꽃이 피어 한들한들 움직이는 모습, 시들어가는 물풀, 늪가에서 들려오는 나그네새들의 울음소리, 더운 여름을 이겨낸 다자란 흰뺨검둥오리, 물닭새끼들이 모여 있는 모습들과 점점 깊어가는 가을 하늘 위에 첫 선발대로 날아오는 기러기류의 울음소리는 멀지 않아 겨울이 오는 것을 느끼게 했다.

그 마지막 가을의 운치를 즐기기 위해 갈대가 늘어선 길을 사이좋게 걸어가는 늙은 노부부의 뒷모습이 아름다웠고,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아이까지 3대가 함께 저수지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도 정겨웠다. 단체로 저수지에 놀러온 어린이집 꼬맹이들은 뭐가 그렇게 궁금한 것이 많은지 돌아가면서 선생님에게 끊임없이 질문은 해댄다. 그 질문에 일일이 대답을 해주다가 철새를 볼 수 있는 망원경으로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관심을 돌리는 선생님의 능숙함에 박수를 보냈다.

#국제 주요 철새도래지가 되다
한국의 습지들은 시베리아·몽골고원 등의 대륙과 일본·동남아 등 해양을 이동하는 철새들에게 매우 중요한 월동지·중간 기착지·번식지의 역할을 하고 있다.

한반도 남부에 위치하는 주남저수지는 중북부 지역에 비해 결빙기가 짧아 조류 월동에 유리하다. 여기에 3개의 저수지가 수로로 연결된 180만평의 광활한 규모와 주변환경이 독립돼 조용한 자연 늪지인데다 저수지 내에 초지, 소택지가 있어 갈대, 물억새 등이 자생하고 있으며 연중 저수량이 거의 일정하다. 또 겨울에도 물이 좀처럼 얼지 않고 각종 먹이가 풍부해 천혜의 조건을 갖췄다. 이 때문에 주남저수지는 1980년대까지 동아시아 최대의 겨울철새 도래지로서 명성을 날렸다.

지금은 주변지역의 도시화와 농어업 형태 변화로 인해 먹이터와 쉼터가 감소해 과거에 비해 도래하는 철새의 개체수가 많이 줄어들었지만 아직도 매년 10월부터 노랑부리저어새·재두루미·가창오리·큰고니 등 멸종 위기종을 비롯해 수만 마리의 겨울철새가 찾아온다.

겨울철 100여 종 이상의 새와 하루 평균 개체수 1~2만 이상이 관찰되며, 겨울철 수금류의 주요 월동지 및 여름철새 백로류와 같은 새들의 휴식, 채식장소로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국제자연보존연맹의 적색자료목록에 올라 있는 가창오리가 연간 약 1~2만 개체 이상 도래하는 곳으로 람사르협약의 기준치를 상회하고 있는 국제적으로 주요한 철새도래지이다. 또 주남저수지는 우포늪과 낙동강하구 철새도래지를 연결하는 가교역할도 담당하고 있다.

#철새와 사람의 공존 고민하다
3층 높이의 전망대에서는 고성능 망원경을 통해 저멀리 흰점으로 보이는 철새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보는 것으로 만족할 수는 없었다.
서툰 사진 솜씨지만 철새들을 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70-200mm렌즈까지 챙겨 왔으니 철새생태학습관과 람사르문화관에서 본 철새들의 사진과 비슷한 느낌의 사진 정도는 찍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철새들은 소리 굉장히 민감했고, 시력이 사람의 8~40배라는 사실을 몰랐다.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 카메라에 담으려 했지만 어느 정도 다가가기만 해도 모두 날아가 버려 만족할 만한 철새의 모습을 담아내지 못했다.

변명을 하자면 철새들이 너무 민첩했고, 철새 보호를 위해 저수지 탐방데크와 저수지 주변 논의 출입이 11월부터 2월까지 금지돼 있어 접근 시도조차 몇 번 하지 못했다.

특이했던 점은 주남저수지뿐만 아니라 주변 논에서 때를 지어 평화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 철새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이는 철새와의 공존을 위해 창원시가 1998년 12월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계절임차 농제도 덕분이다.

이 제도는 겨울철 철새 때문에 보리 재배를 못 하는 주변 주민에게 철새 도래 기간에는 농지를 주민에게 돈을 주고 임차한 뒤 철새먹이인 보리를 재배토록 하는 것이다. 이후 환경부가 이 사례를 참고해 전국 철새도래지 주민들에게 비슷한 방식의 농지를 임차하는 ‘생물종다양성 관리계약제도’로 확대됐다.

이뿐만 아니라 매년 겨울 개최되는 ‘주남저수지 철새축제’는 주남저수지를 국제적 철새도래지로 만든다는 야심찬 계획 아래 철새와 사람의 공존 방법을 고민하는 시간을 마련하고 있다. 올해 ‘제6회 주남저수지 철새축제’는 오는 12월7일부터 9일까지 3일 간 ‘저수지, 그곳에 깃든 생명을 찾아서’라는 주제로 개최되며, 특히 관의 협조와 각계각층 전문가들의 조언을 얻어 지역주민들이 스스로 축제를 준비해 큰 기대를 모으고 있다.

글·사진=조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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