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문무대왕릉(수중왕릉)

울산종합일보 / 기사승인 : 2020-06-04 18: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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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종합일보/신문-홍성조의 역사·문화이야기 59
▲ 경북 경주시 양북면 봉길리 앞바다에 수중릉인 신라 문무왕릉이 있으며 사적 제158호로 일명 대왕암으로도 전해지고 있다.
경북 경주시 양북면 봉길리 앞바다에 수중릉인 신라 문무왕릉이 있으며 사적 제158호로 일명 대왕암으로도 전해지고 있다.

삼국통일을 달성한 문무왕은 통일 이후 불안정한 나라의 안위를 걱정하며 죽어서도 자신의 시신을 불식에 따라 화장하여 유골을 동해에 묻으면 자신은 용이 되어 나라를 평안하게 지키도록 하겠다고 했다.

이에 왕의 유해를 화장해 동해의 대왕암 일대에 뿌리고 대석에 장례를 치뤘으며, 왕의 유언을 믿어 그 대석을 대왕암이라고 불렀다

대왕암은 육지에서 250미터 떨어진 곳에 있으며 큰 바위가 주변을 둘러싸고 있고 중앙에 넓은 공간이 있는데 이 공간에 대석을 자연스럽게 배치한 것 같이 보인다.

중앙 대왕암 주변을 큰바위가 둘러싸고 있는데 네방향으로 물길이 나있어 주변바위는 네 부분으로 구분돼 있다.

전체적으로 자연적 물길이 나있는 상태이나 약간의 인공을 가하여 튀어나온 부분을 떼어내어 공간을 약간 가다듬은 흔적이 일부 발견됐다.

대왕암에서 멀지않은 육지에 낭산이라고 신성시되는 언덕이 있는데 이곳에 능지탑이라고 불리는 탑이 있다.

문무왕의 시신이 이 능지탑에서 화장돼 대왕암 주변에 뿌려졌다고 전한다.


▲ 대왕암은 육지에서 250미터 떨어진 곳에 있으며 큰 바위가 주변을 둘러싸고 있고 중앙에 넓은 공간이 있는데 이 공간에 대석을 자연스럽게 배치한 것 같이 보인다.
한편 신라의 한 설화로 전해내려온 이야기로는 문무왕의 아들 신문왕에게 만파식적이라는 피리를 주어 문무왕이 죽은 후 동해바다의 용이 되었는데 만파식적을 불면 용이 나타나 나라의 구하고 안위를 지켰다는 이야기다.

아들 신문왕은 바다에서 1.5킬로미터 떨어진 동해변에 부왕을 기리는 감은사를 지어 절의 금당 아래까지 바닷물이 들어오도록 설계해 부왕인 문무왕이 용이 되어 쉽게 드나들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전해진다.

감은사 동쪽위 약간 높은 언덕에 대왕암을 바라다 볼수있는 곳이 있는데 이곳에 이견대를 짓고 신문왕은 이곳에 수시로 와서 부왕의 높은 뜻을 깊이 새겼다고 전해진다.

현재도 천연고도 경주의 관광코스로 단연 우선시 되고 있다.

글 정리 : 울산종합일보/신문 홍성조 발행인, 대표이사
사진 : 김명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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