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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쪽에서 바라본 경주 낭산의 모습과 황복사지 삼층석탑이다.(국보제37호) 이 탑은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이며 신라 효소왕이 부왕인 신문왕의 명복을 빌고자 692년에 이 탑을 세웠다. 본지 홍성조 대표이사가 황복사지 삼층석탑을 취재차 방문했다. |
남쪽과 북쪽에 봉우리를 이루었고 허리는 잘룩해 야산처럼 낮고 부드러운 능선을 이루고 있다.
산자락에는 거문고의 명인 백결선생이 살았으며 문창후, 최치원이 공부하던 독서당도 있다.
또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경주의 진산이라 기록돼 있으나 삼국유사, 삼국사기에는 신라의 주산으로 되어 있다.
실성왕 12년 낭산에 구름이 일어나 향기로운 바람이 가득한채 사라지지 않자, 신령이 내려와 있다고 생각해 그 후부터 벌목을 금했다.
이러한 낭산을 배경으로 삼국통일을 기념하기 위한 사천왕사가 창건됐다.
이 절 뒤편에는 선덕왕릉이 있는데 이곳이 바로 선덕왕이 “내가 죽으면 도리천 중에 묻으라”라고 유언한 장소이기도 해서 불가의 말대로 이 산을 수미산이라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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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 낭산 서쪽 중턱에는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의 화장터 또는 소조불상을 모셨던 곳으로 추정되는 능지탑이 있다. |
그 주변으로는 문무왕의 화장터 또는 소조불상을 모셨던 곳으로 여겨지는 능지탑이 남아 있다.
글 정리 : 울산종합일보/신문 홍성조 발행인, 대표이사
사진 : 최상형 기자·박기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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