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적인 아이로 키우는 그림그리기(Ⅱ)

울산종합일보 / 기사승인 : 2020-06-15 11: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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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종합일보 김성동 필진(한국미술협회 서양화가)
▲ 김성동 한국미술협회 서영화가
창의적인 사고는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꾸준히 상상하고 펼쳐나갈 때 형성되는 것이다. 흔히들 어린이 아이들의 마음을 하얀 도화지에 비유한다. 어떤 색으로 무엇을 그리느냐에 따라서 그 도화지의 색이 달라지듯 말이다.

다른 공부도 그러하겠지만 아동기의 그림그리기는 특히 더 그러하다. 지난번(2019년 8월28일)에 창의적인 아이로 키우는 그림그리기(Ⅰ)에서 강조했던 3~9세 정도 시기의이 아이들이 그리는 그림은 잘 그려진 예술로서의 그림을 그리는데 그 목적이 있지 않다고 했었다.

물론 인지 능력이 있는 시기부터 각 분야에서 천재적 소질을 나타내는 영재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그림그리기를 자기 마음대로 그리며 무한한 상상력과 창의력을 키우는데 있다. 하지만 정작 그림을 그리는 아이들은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단지 그 시기에 그러한 활동을 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키워지는 것이다. 하지만 자유로운 아이들이 생각이 바탕이 된 창의력 성장을 부모들이 일부분 막고 있으며 방해를 하고 있는 면이 있다고 본다. 3~4세의 어린 아이부터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해 본격적인 공부를 위한 학원 다니기를 하기 전까지의 초등학생은 미술학원에 많이 다닌다.

그냥 아이가 좋아서 보내는 경우나 그 시기가 아니면 바빠서 보내지 못할 것 같은 생각에서 일 것이다. 아동미술학원을 오랫동안 경영하면서 직접 보고 느꼈던 점은 특별한 사회적 이슈가 바뀌지 않으면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막연히 남들이 보내고 친한 친구들이 다니니 학원에 보내는 것 같다. 물론 그 목적과 이유를 정확히 알고 보내는 학부모가 많아진 것 같기는 하지만 말이다. 매주 종이접기를 하고 만들기도 하고 그리기를 하며 다양한 미술활동을 접하게 한다.

하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그러한 활동보다는 사실에 가까운 그림을 그리고 묘사력을 키우는 그림을 배우게 하고 발달 단계와는 별 무관하게 그런 그림을 잘 그려진 그림으로, 잘하는 아이로 보는 것이다.

물론 그것도 모두 틀린 말은 아니지만 어린아이들이 종이접기를 하고 만들기를 하는 것은 단순히 다양한 장르의 미술활동을 접하게 하는 것보다 그 시기에는 손가락의 모든 소근육들을 활발하게 사용하게 해 좌.우뇌를 골고루 활성화 시키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성인이 되어 고착화 된 뇌를 유연하게 만들기란 어렵기 때문에 말이다. 그런데 때로는 어릴 때부터 단계적 미술활동을 잘 시켰다는 일부 아이들을 보면 초등학교 1학년인데 4절의 큰 스케치북에 소묘를 그리고 그 옆면에는 한바닥 가득 소묘란 무엇인지를 마치 고등학생이 시험공부를 위한 노트처럼 글로서 빼곡하게 적게 해 완성된 스케치북을 가지고 학원에 상담받으러 온 경우를 경험한 적이 있었다.

스케치북을 내 밀며 “우리 아이는 개인선생님에게 여기까지 배우다가 왔어요”라며 뭐라고 말 할 수 없이 당당하고 나름이 확고한 부모 철학이 있으신 것 같이 말이다. 하지만 정작 아이는 그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손가락이 아파서 “선생님 손이 아파요”라고 하면 힘들어한다. 어쩌면 글도 잘 모르는 아이에게 글짓기를 시켜서 대단한 소질을 키웠다고 뿌듯해 하는 부모님과도 같이 느껴진다. 이야기를 하자면 이렇다. 글을 배우는 단계를 나누면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 짓기의 다섯 단계로 나눈다.

가만히 우리 아이들을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태어나면 처음에는 부모가 하는 말을 듣고 입 모양을 빤히 본다. 그리고는 뭐라고 또렷하지 않는 말부터 시작한다. 다음은 글자를 알게 되면서 읽고, 쓰며 맨 마지막단계가 글짓기를 하는 것이다.

글짓기의 단계는 마치 집을 짓는 것과 같아서 각 재료의 특성과 용도를 잘 알아야지만 적소에 사용 할 수 있다. 창문에 써야 할 재료를 바닥에 깔아 놓으면 어색하고 안되는 것처럼 글짓기도 글자가 의미하고 있는 내용을 알아 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어휘력이 따라야 된다는 것이다. 단순히 글 모양을 보고 글을 읽을 수 있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차를 타고 길을 지나가며 네온사인에 적혀있는 ‘카페’라는 글자를 읽을 수 있다고 그 글이 나타내는 의미를 아는 것은 아니다.

그 것으로 글짓기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림그리기는 다르다. 어휘력이 없어도 머릿속에 생각되어지는 무수한 표현들을 그림으로 담을 수 있다. 단지 그 내용을 글로서 나타내지 못하고 어른들이 모를 뿐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그림은 밖으로 나타나는 것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림 속에 담겨있는 이야기를 들어 봐야 하는 이유이다.

물감으로 엉망이 된 그림을 보고 “너는 몇 개월을 미술학원에 다녔는데 아직도 물감 칠이 엉망으로 번지고 깨끗하게 못 그렸어!”라고 하며 기능만 강조하고 무한한 상상력을 키워나갈 수 있는 중요한 길목을 막아서는 안 될 것이다.

비록 이해가 안 되는 그림을 거꾸로 들고서라도 “이 그림이 뭐야?”라고 관심을 보이며 아이에게 물어봐야 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어느 여름 날, 다섯 살짜리 아이와 엄마가 저녁 언덕길을 걷는데 서녘으로 붉은 노을이 펼쳐진 광경으로 보고. “엄마, 하늘이 왜 저렇게 빨게? 라고 하였을 때, 엄마가 “응, 저건 노을이라고 해, 우리가 집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이제 해도 저녁 먹으로 집으로 가는 거란다”라고 말 하며 “우리도 어서 집에 가서 저녁 먹자!”고 했을 때, 그 말에 아이는 “아, 그렇구나!” 며 엄마 손을 잡고 “우리도 빨리 집에 가서 저녁먹자” 라며 즐겁게 집으로 갔다라고 가정하자.

그리고 며칠 후 아이는 물감을 스케치북에 황칠을 하듯이 붉게 칠을 해 그림을 그려 엄마에게 의기양양 하게 자랑을 하였다. 엄마가 깜짝 놀라며 “이게 뭐야! 어서 치워”라고 한다면 아이는 그림그리기를 싫어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곧 창의력이 커 가는 것을 막는 샘이다.

그렇지 않고 엄마가 “ 와~ 참 잘 그렸네!” 라고 칭찬을 하고 “그게 뭐야?”라고 물어 봤다면 아이는 신이 나서 “저번에 엄마랑 집에 올 때 해님이 밥 먹으러 집에 들어가는 거야!”라고 말을 하며, 그 때를 머릿속에 떠 올리며 상상을 하는 것이다.

비록 손놀림이 어눌하고 물감 양 조절이 안 되었을 뿐이지 아이의 마음속에는 그 때 보았던 그 하늘이 온통 머릿속에서 또렷하게 기억되고 그날의 엄마와의 추억과 감동, 새로운 생각들로 채워지는 것이다.

또한 이 시기의 그림그리기의 중요한 가치는 이것이며, 그런 아이들을 보며 엄마가 “아~ 노을 !” 이라고 했을 때 아이는 “응, 맞아, 노을” 하면 노을에 대한 글의 의미도 알아가게 되며 어휘력도 하나씩 키워진다.

아동미술은 선행 교육이 아니라 발달 단계에 맞는 교육을 받아야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으며 아동미술이 추구하는 목적이 고학년 이후의 예술을 위한 미술과 다름을 이해 될 것이다. 말과 글이 어눌한 시기의 그림그리기 한 장이 시 한편이나 수필 한편과도 같은 엄청 난 것임을, 이것이 아동미술이 창의력을 키워 다른 모든 분야에 발휘되는 교육이다.

아울러 어린 시절에는 많은 것들을 보게 하고 체험하며 오감으로 느끼게 하는 환경을 조성하여 자연스럽게 습득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짧은 글이지만 발달 이 발달시기에 있는 자녀를 둔 부모님들께 창의력이 자라는 아이들로 성장 시키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며 하는 바람이다.
울산종합일보 김성동 필진(한국미술협회 서양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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