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양읍성

울산종합일보 / 기사승인 : 2020-08-11 11: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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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종합일보/신문-홍성조의 역사·문화이야기 69

▲ 복원된 언양읍성 정문격인 영화루
언양읍성은 울산시 울주군(군수 이선호) 언양읍 동부리에 소재하며 사적 153호이다.

고려때 토성으로 최초 축조됐고 조선시대 연산군때 석성으로 개축됐다고 한다.

다시 또 임진왜란때 무너졌고 지금 남아있는 것은 광해군 9년에 고쳐 쌓은 것이라고 전해진다.

지정면적 4만1349평방미터, 둘레 약 1000미터, 현재 성곽의 일부가 남아 있다.

언양읍성은 토성과 석성으로 축조돼 있는데 둘레는 1498척, 높이는 8척이었다.

이후 1500년(연산군 6년)에 현감 이담룡이 돌로 개축해 확장했는데 이때의 둘레는 3064척(약1500미터) 높이가 13척(6.3미터)이었다.

또 한첩이 834개소 이고 성안에는 우물이 네곳 있었는데 현존하는 석상은 둥글게 자리잡은 성의 기초 위에 축조돼 있다.


▲ 언양읍성 동문(망월루), 서문(애일루)이 기록돼 있다.
보통의 성벽은 무사석 모양의 반듯한 돌 또는 산돌을 차곡차곡 쌓는 방식으로 축조하는 것이나 이 성에서는 거대한 바위를 굴려서 면만 거칠게 다듬어 큰돌을 떠다 얹어 큰돌과의 사이에는 웬만한 충격에는 견디어 낼수 있기 때문에 지금도 부분 부분 잘 남아 있다.

성의 기초는 중간중간에 돌출한 부분이 있는데 이것은 문지나 포로에 해당하는 부분으로서 방어에 상당한 경험과 군사 지식이 있는 사람의 설계하에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언양읍성도 경주남산의 신성이나 문무왕때에 축조된 부산성 등의 석축기법과 유사성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축성방식을 계승한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이 지역은 경주, 울산, 밀양, 양산과의 교통의 요지이기 때문에 이 읍성의 전략적 중요성을 짐작 할 수 있다.



▲ 남문(영화루), 북문(계건문)으로 기록돼 있다.

 

언양읍성(남문영화루)

언양읍성은 고려 공양왕 2년 1390년에 토성으로 처음 만들어졌으며 효과적인 주민보호와 군사적 방어력을 높이기 위해 조선 연산군 6년에 석성으로 새로 지어졌다.

그리고 임진왜란때 무너진 것을 광해군 4년에 재정비했으나 근현대기 남천의 제방축조를 비롯한 여러 공사에 성에 있는 돌을 가져다 써서 훼손이 심했다.
 


▲ 언양읍성의 정문에 해당하는 남문은 1800년대 초반 진남루에서 영화루로 이름이 바뀐 것을 알 수 있으며, 1900년 전후 최종소실 된것으로 추정된다. 본지 홍성조 대표이사가 남문 영화루를 가르키고 있다
한편 언양읍지에는 동문은 망월루, 서문은 애일루, 남문은 영화루, 북문은 계건문이라고 기록돼 있다.

언양읍성의 정문에 해당하는 남문은 1800년대 초반 진남루에서 영화루로 이름이 바뀐 것을 알 수 있으며 1900년 전후 최종 소실된 것으로 추정된다.

영화루 앞에는 효과적으로 적을 방어하려고 성문을 둥글게 감싸안은 반원형의 웅성을 두었으며 이 웅성은 성벽의 안밖을 세워 쌓은 협축식이다.

웅성 안쪽너비는 15미터이고 동쪽으로 난 웅성 개구부의 폭은 8.3미터로 읍성보다 넓은 편이다.

글 정리 : 울산종합일보/신문 홍성조 발행인, 대표이사
사진 : 김명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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