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지 않은 가을 끝자락, 체코의 낭만
외롭지 않은 가을 끝자락, 체코의 낭만
  • 조미정 기자
  • 승인 2018.11.09 16: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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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 여행- 1. 체코
가을의 끝자락에 도착한 체코는 차분하고 묵직하지만 결코 외롭지 않은 풍경과 시선이 있었다.
가을의 끝자락에 도착한 체코는 차분하고 묵직하지만 결코 외롭지 않은 풍경과 시선이 있었다.

서유럽과 동유럽 여행은 우월을 매길 수 있는 게 아니다. 3년 전 보았던 서유럽의 도시들이 화려하고 스케일이 큰 유럽 고유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면, 동유럽의 도시들은 깊고 중후한 멋과 매력이 넘친다. 체코, 오스트리아, 헝가리 3개국을 여행하는 동안 지금의 동유럽을 만든 것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했다. 중세 도시의 깊은 멋이 도시 전체의 아우라를 지배하지만 결국 도시의 이미지를 결정하는 건 사람이라고. 가을의 끝자락에 도착한 체코는 차분하고 묵직하지만 결코 외롭지 않은 풍경과 시선이 있었다.

 중세 도시의 깊은 매력, 보헤미아 왕국의 정신
‘따로 또 같이’ 카를교를 즐기는 이방인의 자세
그림 같은 소도시… 동화 마을 체스키크룸로프

유럽의 성당들은 하나같이 근사하지만 성 비투스 성당의 클래식한 위용만큼은 잊을 수가 없다.
유럽의 성당들은 하나같이 근사하지만 성 비투스 성당의 클래식한 위용만큼은 잊을 수가 없다.

# 가슴 설레는 프라하의 가을 낭만
프라하의 낭만은 상상만으로 마음을 설레게 하는 뭔가가 있다. 부츠와 롱스커트 자락을 휘날리며 카를교를 걷는 꿈을 가끔 꾸었다. 프라하 성에서 내려다 본 빨간 지붕의 향연은 동유럽에 첫발을 내딛는 이방인의 가슴을 떨리게 했고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프라하 곳곳은 온기와 기품이 묻어났다. 

체코는 보헤미아 왕국의 정신이 흐르는 곳이다. 중세 때부터 자리를 지켜온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시가지를 가득 채우고 있다. 프라하 성의 성 비투스 성당 앞에서 체코의 대한 동경은 드높아졌다. 단 렌즈로는 다 담을 수 없는 1000년의 세월 앞에 숙연해지는 건 모든 여행자의 한결같은 마음이었다. 세월과 역사를 품은 모든 것들은 누구나 공감하는 멋스러움을 지니고 있다. 

유럽의 성당들은 하나같이 근사하지만 성 비투스 성당의 클래식한 위용만큼은 잊을 수가 없다. 프라하 성의 나무에는 가을의 끝자락이 물들었다. 곧 추위가 몰아닥칠 체코의 마지막 가을이다. 햇살이 환히 비추지 않아도 어둡지 않은 빨간 지붕의 향연을 내려다보면서 왜 사람들이 체코에서 ‘한달 살기’를 하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카를교를 즐기는 방법은 저마다 다르지만 아름답고 낭만적인 순간을 가슴에 기억하려는 마음은 모두 하나다.
카를교를 즐기는 방법은 저마다 다르지만 아름답고 낭만적인 순간을 가슴에 기억하려는 마음은 모두 하나다.

# 카를교를 즐기는 다르고도 같은 마음
트램을 타고 카를교를 향하는 길은 현지인과 다르지 않았다. 빨간 트램이 들어오자 체코에 사는 사람처럼 폴짝 트램에 올랐다. 블타바 강 저 너머 카를교가 조금씩 보이자 늘 봐왔던 다리처럼 익숙하게 느껴졌다. 사랑의 자물쇠가 주렁주렁 달린 철제 난간의 약속은 여느 나라의 다리 풍경과 다르지 않았다. 

1357년 카를 4세가 놓은 이 다리는 다리도 다리지만 다리 위에서 보는 블타바 강 풍경이 압권이다. 다리 위에는 사진을 찍는 관광객과 다리의 풍광을 스케치하는 청춘, 산책하는 현지인들과 기념품을 파는 사람들. 나이 지긋한 거리의 화가와 자유영혼의 버스커들로 북적였다. 모두를 위한 음악과 퍼포먼스가 흘러넘친다. 어떤 사람은 사진을 찍고 어떤 사람은 스케치를 하며, 또 어떤 사람은 노래를 하고 어떤 사람은 그저 바라만 보며 다리의 낭만을 즐긴다. 카를교를 즐기는 방법은 저마다 다르지만 아름답고 낭만적인 순간을 가슴에 기억하려는 마음은 모두 하나다. 

카를교에서 내려다 보는 블타바 강 풍경이 압권이다.
카를교에서 내려다 보는 블타바 강 풍경이 압권이다.

# 유머와 해학의 광장은 투쟁의 역사
구시가지와 신시가지가 어우러진 프라하 시내는 많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프라하는 평온하고 온기가 넘쳐흐르며, 다정하고 살갑기도 했다. 

정시를 맞춰 천문 시계탑 아래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600살이 된 시계의 역사는 프라하의 상징이 되었고 수 초만에 시계에서 나타난 12사도 조각상의 회전을 보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뒤로 젖혀 시계를 쳐다보는 모습은 흥미롭다. 

흔들림 없이 견고해 보이지만 체코는 독일, 오스트리아 등 강대국에 둘러싸여 끊임없이 싸웠던 역사를 지니고 있다. 해안선이 없는 완전한 내륙국가지만 북부유럽의 폴란드 평원에서 중부유럽의 다뉴브강 유역으로 통하는 관문인 모리비아지방에 놓여있는 요지이기 때문이다. 

독일의 통치를 받아 국가 소멸기를 겪었고 구 소련과의 동맹조약을 체결한 뒤 공산당과 비공산주의자 간의 연립정부 시절도 겪었다. 1988년 고르바초프에 의한 구소련의 개혁 바람이 동구권에 불어 닥치자 민주화개혁 요구 시위가 우리의 촛불시위처럼 불붙었고, 1989년 바츨라프 하벨이 41년 역사상 처음으로 비공산주의자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시가지의 광장은 유머와 해학이 넘쳐흐르지만 그들도 우리처럼 민주화개혁을 위해 광장으로 쏟아져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되면 가슴이 뜨거워진다. 

프라하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는 느낌이 사뭇 달랐는데 구시가지가 회색 무거움을 아직 지니고 있다면 신시가지는 여느 도시의 화려한 도심과 전혀 다를 바 없었다. 너무 화려한 관광지라 도심의 역사가 바라지는 게 아닌지 걱정이 될 정도였다. 노천카페에서 마셨던 커피도, 꽤 비쌌던 아이스크림도, 현지인들의 다양한 모습들도 체코를 기억하는 소소하는 이야기가 됐다. 

프라하는 평온하고 온기가 넘쳐흐르며, 다정하고 살갑기도 했다.
프라하는 평온하고 온기가 넘쳐흐르며, 다정하고 살갑기도 했다.

# 동화마을 체스키크룸로프의 감동
프라하에서 버스로 약 3시간 정도를 달리면 그림 같은 풍경들에 눈이 호강한다. 초록 들판의 향연이 끝나갈 즈음 체코 남 보헤미아 주의 작은 도시, 체스키크룸로프에 도착한다. 

입구부터 동화 마을같은 이곳은 1992년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됐으며 고딕과 르네상스 양식의 건축물들이 그림처럼 보존돼 있다.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길이 미로처럼 얽혀 있는 마을길을 걸으며 아기자기한 수공예품을 사거나 카페에서 따뜻한 커피 한잔의 여유도 즐길 수 있다. 

해마다 6월이면 이곳에서 축제가 열린다. 마을 사람들이 르네상스 시대의 옷을 입고 거리로 나와 공연을 하면 체코의 시간은 중세로 흐르게 된다. 이 작은 마을을 보려는 관광객은 오전이 지날수록 점점 늘어났다. 그래서 최근에는 이탈리아처럼 체코 소도시를 여행하는 사람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TV예능 프로그램에 소개되기 전까지 체코는 내게 회색빛 중세도시와 같은 느낌이었다. 다만 차가운 도시 프라하의 낭만만큼은 가둘 수 없었다. 

발이 아프도록 체코 구석구석을 누비다가 문득 우리가 틀에 짜 맞춰 놓은 세상의 이미지는 얼마나 편협하고 소소한 것인지 되돌아보게 되었다. 직접 가보지 않으면 결코 느낄 수 없는 감흥이 아닌가. 그래서 죽을 때까지 여행자의 신분을 놓지 못하는 거다. 그리고 지금 이 나이에 여행 말고 도대체 뭘 할 수 있는지.         

글·사진=조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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