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형제가 세상에 남긴 사류명(四留銘)
두 형제가 세상에 남긴 사류명(四留銘)
  • 울산종합일보
  • 승인 2018.09.23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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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환의 울산이야기(울산종합일보 논설위원 겸 필진부회장)
조경환 울산종합일보 논설위원
조경환 울산종합일보 논설위원

중국 북송의 왕참정(王參政)은 세상에 남겨야 할 것에 대해 적은 사류명(四留銘)에 재주를 다 쓰지 말고 조물주에게 돌려주고 봉록을 다 쓰지 말고 조정에 돌려주고 재물을 다 쓰지 말고 백성들에게 돌려주고 복을 다 누리지 말고 자손에게 돌려주라 일렀다.

긴세월이 흐르고 세상은 변하였지만 겸손과 겸양 그리고 절제를 가르치는 귀한 말씀이라 하겠다.

2018년 9월18일 울산동구 현대고등학교에서는 학교관계자와 내빈들이 참석한 가운데 동문회와 교직원 명의의 감사비석 제막, 풋살장과 족구장 준공 기념행사가 있었다.

이 시설들은 각 2회와 4회 졸업생인 조광식·광명형제가 학교에 기부한 1억2500만원을 재원으로 완공됐다.

그들은 20여 년간 울산시에서 공무원으로 재직했고 2015년 동생 광명(44·울산시청), 2016년 광식(47·동구청)이 각각 지병과 사고로 미혼인 채로 세상을 떠났다.

현행 공무원법상 부모나 자녀들에게만 퇴직연금이 지급되므로 부모선망과 무자녀인 그들은 연금지급에서 제외됐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당시 김기현 울산시장과 권명호 동구청장은 배우자나 직계 가족 없이 사망해 유족 가운데 수급권자가 없는 경우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한도의 금액을 연금 취급기관장(시장·구청장)에게 지급해 기부 및 기념사업에 쓸 수 있도록 한 공무원 퇴직연금제도에 의거, 연금을 받을 수 있게 했고 그들의 누나들과 상의하여 모교인 현대 고등학교에 기부하게 됐다.

한 가족에게 집안의 기둥이던 아들들이 연이어 세상을 떠나는 비극이 일어난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그러나 그들의 가족들은 그들이 당한 큰 슬픔을 우리사회에 의미있는 일로 되돌리는 놀라운 모습을 보여 주었다.

산다는 것과 죽는다는 것은 어쩌면 한공간의 다른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원하던 혹은 그렇지 않던 자리를 바꿔 앉을 날은 반드시 오고야 만다 누군들 예외가 있겠는가?

울산 동구의 염포산 자락 질마재 바위에 형제가 나란히 앉아 풋살장과 족구장에서 밝고 건강한 모습의 후배들을 보면서, 그들 또한 잠시 바꾸어 앉은 의자에서 행복한 미소를 지을 것이다.

국가의 품격과 국민의 행복이 반드시 거대 담론속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구성원으로 성실하고 책임을 다하는 것, 그리고 봉사를 통한 이타적인 행위와 가족과 이웃을 사랑하는 따뜻한 마음이 새로운 시대적 사류명(四留銘)이 돼야 한다.

두형제와 그들의 가족이 보여준 작지만 그러나 절제되고 품격있는 처신이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오늘이다.

조경환 울산종합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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