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가 죽고 나면 남은 현정이는…”
“우리 부부가 죽고 나면 남은 현정이는…”
  • 정혜원 기자
  • 승인 2017.12.21 11: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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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愛울산-장애를 앓고 있는 광우 씨 가족
 

이번 겨울은 유난히도 춥다. 1946년 이후 71년만에 빠른 한강 결빙이 이뤄질 정도다. 그러나 아직 한파는 끝나지 않았다. 더 큰 한파가 불청객처럼 언제 또 닥칠지 모른다. 이광우(63)씨 가족의 삶도 그러하다. 광우 씨 가족은 몸이 불편해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 그는 신장이 제 기능을 못해 인공혈관을 심어 28년 째 혈액 투석을 하고 있다. 부인 정인자(57)씨는 한 쪽 눈이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이다. 딸 이현정(28)씨는 또래 성인 여성과 달리 말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고, 3살배기 수준에 멈춰 있는 지적장애 1급이다. 광우 씨와 그의 부인은 팍팍한 그들의 삶보다 본인들이 죽고 난 후 남겨질 딸 아이 생각에 더 갑갑하다.

28년간 혈액 투석해… 살아 있는게 기적
끝없는 시련과 고통 속에서 근근히 살아 
장애가 있는 딸이 혼자 남겨질까 두려워

 
 

모든 것을 앗아간  신부전증
광우 씨는 신부전증말기다. 신부전증은 신장 기능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몸 안에 노폐물이 쌓여 신체의 여러 가지 기능이 제대로 수행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그의 신장 2개는 소변 등 노폐물을 걸려낼 수 있는 기능을 전혀 하지 못한다. 그는 현재 오른팔에 심은 인공혈관을 이용해 노폐물을 제거하고 신체내의 전해질 균형을 유지하며 과잉의 수분을 제거하는 혈액투석을 하고 있다. 이를 위해 화요일, 목요일을 제외한 날은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병원에서 생활한다. 인공혈관에 성냥개비만한 바늘을 끼워 4~5시간 정도 노폐물을 걸러낸다. 이틀에 한번 꼴로 투석을 하는 그는 48시간 신장이 일할 걸 4시간 만에 처리해야하는 것이다. 그는 “신장이 기능을 못하기 때문에 소변이 전혀 나오지 않아요. 투석을 한 번만 빠져도 몸에 위험 신고가 옵니다. 아마 두 번 빠지면 죽겠죠?” 

광우 씨는 자신의 죽음을 웃으며 담담하게 얘기했다. 그는 이미 여러 번 생사의 고비를 넘겨 지금까지 본인이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신기하다고 했다. 

그의 몸 상태는 망가질 대로 망가져 있었다. 지금은 눈도 잘 보이지 않아 시각장애 4급 판정을 받았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그가 30대 중반이었을 때 조선소에서 배관공사일을 하다 보니 잔병이 잦았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자꾸 다리에 쥐가 심하게 나, 병원에 갔더니 의사에게 신장이 다 망가졌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수술을 하기 위해 지방 병원을 전전했지만 성공적이지 않았고, 결국 서울에서 인공혈관을 심었다.   
광수 씨는 “그 의사가 날 살려줬어요. 그 의사 아니었으면 난 지금 여기 없었을 거에요. 여러 번 수술을 하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학교를 다니면서 공부했으면 신체기관이 내 몸에 어떤 작용을 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기본적으로는 알 수 있었을 텐데... 저는 밥만 먹고 공사판에서 일만 하다 보니 내 몸을 소중히 다루지 않았어요”

‘가난’하기 때문에…
그는 신장 이식을 할까도 생각을 해봤다고 한다. 그러나 돈이 없었다. 자신이 중환자실에 1년 있었을 때 아내가 남편을 살리기 위해 아파트를 팔아 병원비로 다 써버린 것이다. 

 

그렇게 빈털터리가 된 광우 씨 가족은 퇴원 후 갈 곳 조차 없었다. 결국 당시 60년 된, 남이 살다가 버려진 집에서 살았다. 사람의 흔적이 없을 정도로 무성하게 자란 잡초를 손으로 일일이 뽑고, 성한 곳은 고쳐가면서 그렇게 2년을 그곳에서 살았다. 

그들은 너무 가난했다. 하루, 이틀 굶는 것은 다반사. 갓 태어난 아기에게 줄 모유조차 나오지 않을 정도였다. 

광우 씨는 “우리가 버려진 집에서 거의 방치돼 듯이 살고 있으니 동네 주민들이 협력해 쌀 한 가마니를 우리에게 주셨어요. 그것도 고마웠었는데, 거기다 동사무소에 연락해 우리를 도와달라고 부탁했던 것 같더라고요. 다음날 동사무소에서 사람이 찾아와 우리의 사정을 듣고 현재 이 아파트에 올 수 있게 해주셨어요. 정말 감사하죠. 이곳은 저희에게 궁궐과 다름없었어요. 따뜻한 물과 온기, 우리 세 명이 누울 수 있는 공간 등 모든 것이 좋았어요”

그들의 시련은 여기서 끝인 줄 알았지만 세상은 그들 편이 아니었다. 아이가 후천적 장애를 가지게 된 것이다. 

광우 씨는 “아이가 태어났을 땐 울음소리도 크고, 아주 똘똘했어요. 그런데 우리가 너무 먹을 것이 없다보니깐... 아이가 태어나서 제대로 먹은 것이 없었어요... 한 날은 애가 평소와 좀 다른 것 같아 병원에 데리고 가니 지적 장애가 있는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너무 못 먹여서 그런 것 같아... 너무 미안했어요…”

그 아이는 지금 성인이 돼 벌써 28살이다. 현정 씨는 말을 하지 못한다. 현재 지적 수준은 3세 정도다. 아침마다 광우 씨와 인자 씨는 현정 씨를 씻겨준다고 분주하다고 한다. 부모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정 씨지만 누구보다 해맑다. 처음 본 사람을 봐도 연신 생긋생긋 웃으며 반겨준다. 현재 현정 씨는 8년간 일주일에 3번, 40분씩 언어치료실에 다니고 있다. 

광우 씨는 “사람들은 어차피 말도 못하는데 거길 왜 보내냐고 흉보기도 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것마저 안보내면 포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현재는 ‘마트 가자’라는 말을 비슷하게 구사할 정도에요. 8년간 다닌 결과가 겨우 네 마디뿐일지라도 저희는 너무 기뻐요. 아직까진 눈빛으로 얘기 할 때가 더 많지만 더 나아질 거라고 믿어요”

 

“내가 능력이 없어서…”
광우 씨는 요즘 현정 씨에 대한 걱정이 많다. 그녀 곁에 자신과 부인이 언제까지나 있을 순 없기 때문이다. 
부인 또한 한 쪽 눈이 실명돼 시각장애 6급 판정을 받았다. 인자 씨는 “어릴 적 홍역을 심하게 앓고 난 후 한 쪽 눈을 잃었어요. 흰자 밖에 보이지 않죠. 밖에 나갈 땐 무조건 검은색 렌즈를 끼고 다녀요” 

몸이 불편한 부부지만 다른 사람 손에 현정 씨를 맡기는 것이 두렵다고 한다. 일전에 생활보조 도우미를 붙여 봤는데, 도우미가 현정 씨를 데리고 다니다가 자신 볼 일 본다고 남의 집에 맡기는 게 다반사였다고 한다. 이 후로는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는다. 

광우 씨는 “세상이 아무리 좋아졌어요. 믿을 만한 사람이 없어요. 시설소도 생각해 봤는데 구박만 받을 거 같고…  답답합니다”

현재 광우 씨와 함께 투석했던 사람들은 모두 다 돌아가셨다고 한다. 28년 이라는 오랜 세월 혈액 투석을 한 사람은 아마 드물 것이다. 그가 그렇게 오랜 기간 버텨낼 수 있었던 건 아마 ‘현정’씨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다.  

그는 “다니는 병원 간호사 분이 저에게 ‘아버님 현정이 때문이라도 오래오래 사셔야 해요’라고 말해요.  제가 일단 살아남기는 했는데… 내 능력으로 현정이 한테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이 닦아주고 머리 감겨주는 것 말고는 해줄 수 있는 게…”

광우 씨 가족은 몸이 온전한 사람이 없다. 그러나 그들은 죽음 앞에서도 서로를 생각할 만큼, 누구보다 서로를 끔찍이 여긴다. 그런 그들에게 해뜰날이 올수 있도록 우리의 도움이 절실할 때다. 

글=정혜원 기자
사진=박기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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