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늙는다는 것
잘 늙는다는 것
  • 울산종합일보
  • 승인 2017.10.19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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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환의 울산이야기(울산종합일보 논설위원 겸 필진부회장)
▲ 조경환 울산종합일보 논설위원

가을이 왔다.

봄은 생명의 새로운 시작이어서 좋고, 여름은 젊음의 뜨거운 열정이 있어서, 가을은 봄에 뿌린 씨앗을 결실로 거두어 겨울을 준비하는 계절이어서 좋다.

마음을 비우고 보면 하늘과 땅과 그리고 사람에게 온통 감사할 일 가득하다.

하지만 그 감사의 기도는 혈기 왕성한 사람들 얘기다.

삶과 죽음의 근원을 물으며 생각이 깊어지는 계절 가을 들판으로 길을 나서 본다.

바람이 분다. 단풍이 시작되는 영남알프스 준령을 넘어 찬바람 불어오니 여기저기서 부고가 온다.

연로하신 부모님들이 계절의 변화를 이기지 못하고 그만 생의 문을 닫고 말았다.

누가 초대하지 않았어도 그렇게 우리는 왔고 허락하지 않아도 떠나는 인생길, 입던 옷 벗듯 훌훌 버리고 그렇게 가신다.

잘 산다는 것, 그 답은 어디에 있는가. 10명 중 3명은 나이 들어 암을 피할 수 없는 현실에서 현재와 같은 의료와 복지 체계에서는 개인이 버틸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다.

우리는 가슴 졸이며 그 시퍼런 칼날이 나를 피해 가던지 그렇지 않으면 착하고 능력있는 자식이 나를 거두어 주길 기도해야 하는가?

부모의 병원비 때문에 형제 자매간에 얼굴을 붉히고 갈등하며 종내에는 부모를 병원에 방치하고, 젊은 가장이 쓰러지면 남은 가족들이 길바닥에 나앉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리고 평생 부인을 사랑하며 살던 70대 노인이 10여 년에 걸친 치매걸린 부인의 병수발 끝에 부인을 살해하고 본인도 자살하는 비극적인 일도 일어났다.

괴롭고 참담한 그 심정이 어떠했을지는 미루어 짐작이 간다.

우리정부도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일찍 파악하고 그동안 여러가지 대책과 방안을 강구하고 있으며 출산정책ᆞ, 청소년 관련정책 노인복지 등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보이고 있다.

우리와 유사한 환경인 독일의 정책을 보면 경쟁질서와 형평성이 독일 복지제도의 핵심이다.

즉 돈이 없어서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하거나, 공부를 하지 못하거나, 일자리를 잃고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열심히 일한 사람이 노후를 걱정하게 만들어도 문제가 있다는 판단이다.

독일 실업수당의 재원은 노동자의 보험료와 정부 지원으로 충당되며 재원의 절반은 정부가 분담한다.

독일의 복지제도가 잘 작동하고 있는 것은 국민과 기업들이 세금을 잘 낼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사회적 연대, 즉 공동체의 가치를 지켜가고 있기 때문이다.

세금을 많이 내도 국민들은 불만을 토로하지 않는다. 안정된 보험과 미래가 보장되어서다. 독일은 약 31% 한국의 경우 일반 직장인은 약 26.5%를 세금과 연금으로 내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복지 상황은 어떤가? 아직 4대 보험에 가입하지 못해 혜택을 받지 못하는 국민이 4명 중 1명꼴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간하는 ‘보건복지포럼’ 2012년 3월호에 실린 내용이다. 건강보험은 6개월 이상 보험료를 내지 못한 생계형 체납자가 129만 가구, 310만명이다.

이들은 병원에 자유롭게 갈 수 없다. 실직을 해도 실업급여를 받지 못하는 고용보험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이 815만명이고, 산재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는 근로자도 1000만명에 이른다.

4대 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연인원으로 전체 국민의 절반이 넘는 2600여 만명이다. 이것이 대한민국이 독일 같은 복지국가로 가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질 좋은 환경제공과 다양한 복지제도를 누군들 마다하겠는가?

다만 그 비용을 어느 세대의 누가 부담하는가의 문제가 아프게 남는다.

큰병 치료 본인부담률 경감과 치매 국가책임제 등 역대정부와 현정부의 정책으로 조금씩 나아지고 일정부분 성과도 있는 지금 쓸데없이 주마가편 하는 것 같아 송구하다.

그러나 지금 상황이 말을타고 달릴때인가? 한시간이면 비행기 타고 일본까지 간다.

탈원전보다 분배와 생산의 문제보다 좌와우의 논쟁보다 더욱 시급하고 당면한 과제가 바로 어떻게 살고 늙어갈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취업난관과 멀어지는 꿈에 방황하는 청년세대와 부모봉양과 자녀양육의 틈새에 갇힌 중년 그리고 질병과 노후생활의 불안에 떠는 노년층의 고민에 대한 시급하고 심층적인 대책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부양의 마지막 세대이며 부양받지 못하는 첫세대인 50·60대 자존심 강한 베이비부머들은 무조건적인 보호와 지원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이 땅의 민주화와 산업발전의 주역으로서 나라의 앞날을 어느 세대보다 염려하며 살아왔다.

그들이 원하는 미래는 인간 존엄성을 잃지 않고, 은퇴 후 삶에 대한 교육·협동조합설립 지원·기금조성·공동체생활지원 등으로 삶을 유지하면서 비참하지 않게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제도를 마련하고 정비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가을볕 아래 잘 익어가고 있다. 천변만화하는 세상 이치에 순응하며 가지산 붉은 단풍처럼 아름답게 살다 가고 싶을 뿐이다.

준비 없이 겨울을 맞을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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