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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롱 무법 지대 직장에서 벗어나고 싶어요”사라지지 않는 직장 내 성희롱
정혜원 기자  |  ujhyewon@u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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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9월 27일  11:3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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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장 내 성희롱이 아직도 만연히 이뤄지고 있다. 관련 법이 제정된지 18년이나 지났지만 근절되지 않고, 드러나는 피해의 양상은 더욱 심각한 실정이다.사진=신섬미 기자

직장 내 성희롱이 아직도 만연히 이뤄지고 있다. 직업능력개발원의 직장 내 성희롱 실태보고서에서 조사대상 근로자 중 29%가 지난 6개월 동안 주 1회 이상 성희롱을 경험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고용평등상담실에 접수된 직장 내 성희롱 신고건수도 2544건이다.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양립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지 30년 이상, 이 법에 직장 내 성희롱 관련 규정이 신설된 지도 18년이나 지났다. 그러나 직장 내 성희롱은 근절되지 않고, 드러나는 피해의 양상은 더욱 심각한 실정이다. 

외모 평가, 술 따르기 강요 등 언어적 성희롱 ‘빈번’ 
남녀 모두 성희롱에 노출… 피해 유형에만 차이 있어
피해자 5명 중 1명 퇴사… 남녀고용평등법 ‘무용지물’

# A(여)씨는 며칠 전 거래처와 미팅 자리에서 상사가 자신을 ‘우리 회사에서 제일 어리고 예쁜 직원’이라고 소개했다. 그녀는 “업무하러 간 자리에서 왜 외모로 나를 소개하는지 이해를 못했다. 그 순간 내가 이 회사에서 맡은 역할이 무엇인지 의문이 들었다”고 토로했다. 그 상사는 자신뿐 아니라 다른 직원에게도 ‘오늘 화장 안했어?’, ‘살이 좀 쪘네?’라는 식의 말을 일삼는다. A 씨는 “외모가 어떻든 일만 잘 하면 되는 거 아니냐”며 “외모보고 사람을 판단하는 것 자체가 저급해 보인다”고 말했다. 

# B(여)씨는 남자 선배들과의 식사자리에서 “요새 왜 이렇게 예뻐졌냐. 연애해?”라는 말을 들었다. 그녀는 당시 말을 했던 선배의 음흉한 표정과 목소리를 잊을 수 없다고 했다. B 씨는 그 자리에서 항의하고 싶었지만 “칭찬으로 한 말인데 뭘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여”라는 식으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까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 C(남)씨는 평소 운동을 많이 해 가슴 근육이 발달해 있다. 남자 직장 상사는 일반 남자들에 비해 가슴이 도드라져 보인다며 “한번 만져보자”고 서스름 없이  가슴을 만졌다. C 씨는 “심지어 거래처 상무한테도 만져보라고 부추겼다”며 “같은 남자지만 수치심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칭찬을 빙자한 성희롱”
직장인들로 이뤄진 유명 커뮤니티 사이트 게시판에 게재된 글이다. 이 곳에선 ‘직장 내 성희롱’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온다. 직장 내 성희롱 예방 교육을 강화하는 추세지만 불만의 목소리는 여전하다.

최근 이 사이트에는 ‘사장님과의 회식자리에서’라는 글이 올라왔다. 글쓴이는 ‘회식자리에서 사장 혹은 직급 높은 임원 옆에 여자직원들만 앉으라고 지시하는 회사가 있나?’라는 질문을 했다. 이에 ‘성희롱이다’, ‘친구가 반도체 중소기업에 다니는데 그렇다고 하더라’, ‘그런 회식자리 가지마라. 정신 나간 회사다’, ‘술 안 따른다고 뭐라 하는 사람도 넘쳐난다’라는 댓글들이 무성했다.   

성희롱이란 지위를 이용하거나 업무와 관련해 성적 언동으로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하거나 고용상의 불이익 등 유무형의 피해를 주는 행위다. 여기엔 육체적, 언어적, 시각적 행위가 모두 포함된다. 

신체적 접촉이나 특정 신체 부위를 만지는 행위 등의 ‘육체적 성희롱’과 성과 관련된 자신의 특정 신체 부위를 고의적으로 노출하거나 만지는 행위, 음란한 편지·사진·그림을 보내는 행위 등의 ‘시각적 성희롱’은 대개 자신이 성희롱 당한 것인지 아닌지 판별이 확실히 이뤄진다.  

그러나 언어적 성희롱은 판별이 모호하다. 성적 관계를 강요하거나 회유하는 행위, 음란한 내용의 전화 통화 등은 쉽게 구분이 간다. 그러나 ▲음담패설 ▲외모에 대한 성적인 평가나 비유 ▲회식석상에서 무리하게 옆에 앉혀 술을 따르도록 강요하는 행위 등은 마치 ‘회사 내 문화’인 것 마냥 거리낌 없이 행해지고 있다. 

공기업에 다니고 있는 아무개(여·25)씨는 같은 직장에서 근무하고 있는 남자 직원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 그는 아무개 씨와 업무상 외근을 나가야 할 때 항상 “같이 데이트하러 가요”라고 말한다. 외근을 나가서도 그녀에게 ‘우리 회사에서 너가 제일 이뻐’라는 말을 일삼거나 대화를 할 때 얼굴을 가까이 대고 얘기해 그녀가 불편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아무개 씨는 “평소 성희롱을 당하면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해왔는데 같은 직장에서 근무하니 업무적으로 엮이는 일이 많아 막상 말하기 힘들더라”며 “그분이 오히려 더 당당하게 그런 말을 일삼으면 괜히 나 혼자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아 그냥 피한다”고 토로했다.

덧붙여 그녀는 “성희롱이라는 기준 자체가 모호해 눈에 띄는 성희롱이 아니면 ‘이러지 마세요’고 말하기 쉽지 않다”며 “특히 외모에 대한 칭찬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건 ‘칭찬을 빙자한 성희롱’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성희롱 여부를 판단하는 객관적인 기준은 없다. 가해자가 어떤 의도로 말을 했느냐보다 그 언행이 피해자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모멸감을 줬는지가 중요하다. 행위자가 칭찬이라고 주장해도 피해자가 성적 혐오감을 느꼈다면 성희롱이 될 수도 있다.

   
▲ 이용득 국회의원이 여성노동계와 지난달 29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 보호 및 실효성 강화를 위한 법 개정 발의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사진=이용득 국회의원 블로그

‘여성’, ‘비정규직’ 성희롱에 취약
직장 내 성희롱 피해는 여성에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남녀 간 피해 유형에 차이가 있을뿐 남자들 또한 성희롱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지난 5월29일 발표한 ‘남녀 근로자 모두 위협하는 직장 성희롱 실태’ 보고서에 피해유형을 살펴보면 여성은 ▲성별 관련 업무 능력 비하 ▲여성성 비하 ▲외모에 대한 성적 비유·평가가 많았다. 남성은 ▲본인을 성적 대상으로 삼는 음담패설 ▲음란물을 보여주는 행위 ▲성관계 강요 및 회유 등 직접적 성희롱과 성추행 사례가 다수를 차지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여성과 비정규직이 성희롱에 취약하다는 통념은 깰 수 없다. 

지난 5일 여성가족부는 전국 공공기관·민간사업체 직원 7844명과 성희롱 대처업무 담당자 1615명을 대상으로 ‘2015년 성희롱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결과 여성의 성희롱 피해경험 비율이 9.6%로 남성(1.8%)보다 5배 이상 높았다. 

성희롱 가해자 중에서는 남성이 88%로 압도적이었고 피해자보다 상급자(39.8%)인 경우가 가장 많았다. 또 일반직원(6.9%)이 관리직(4.6%)보다, 비정규직(8.4%)이 정규직(6.2%)보다 성희롱 피해를 더 많이 입은 것으로도 나타났다.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직장 내 성희롱이 대체로 여성 비정규직을 대상으로 남성 상급자에 의해 발생한다는 통념이 구체적으로 확인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피해자가 ‘피해’만 보는 현실 
하지만 대부분 성희롱 피해자들이 적극 대응에는 나서지 못하고 있다.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 10명 중 8명은 피해를 당했을 때 특별한 대처를 하지 않은 채 참고 넘어갔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5명 중 1명은 피해자임에도 결국 회사를 그만뒀다는 것이다. 

여가부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참고 넘어간 이유에 대해 여성 피해자 50.6%는 ‘문제를 제기해도 해결될 것 같지 않아서’라고 응답했다. 남성 피해자는 72.1%가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아서’라고 답했다. 

성희롱 피해자들이 문제를 제기하면 회사로부터 불이익 조치를 당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서울여성노동자회가 지난해 실시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 57%가 회사로부터 불이익 조치를 당했다. 불이익에는 파면·해임·해고 또는 그 밖의 신분상실과 집단 따돌림·폭행·폭언 등 정신적·신체적 손상이 가장 많았다. 피해자의 72%는 회사를 떠나는 상황에까지 몰린 적이 있다고 답했다.  

남녀고용평등법 개정
이에 여성노동계는 지난달 직장 내 성희롱 예방과 피해자 구제 조치를 강화하는 내용을 담은 남녀고용평등법 개정안을 발의한다고 밝혔다.

그들은 “직장 내 성희롱은 현재진행형”이라며 “법이 있어도 성희롱을 예방하지 못하고 피해자를 보호하지 못한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라며 국회를 찾아 이 법의 개정을 촉구했다. 

여성노동계는 무엇보다 성희롱 예방을 위한 사전 조치부터 성희롱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응할지, 사업주가 어떻게 책임과 의무를 질 것인지 세밀한 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개정안에는 직원들이 직장 내 성희롱과 관련한 내용을 쉽게 볼 수 있도록 게시의무 조항을 새로 만들어 취업규칙을 작성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10인 미만의 영세사업장도 이 조항을 따르도록 했다. 

또 현행법은 직장에서 성희롱이 발생했을 때 사업주의 의무를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은데다 조사와 피해자 보호 원칙과 내용을 전혀 명시하지 않아 피해자가 주체적으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 내용을 반영해 개정안에는 사업주가 성희롱 신고를 받거나 인지했을 때 의무적으로 즉시 조사하고 신고인이나 피해자에게 조사결과와 사유를 통보하도록 했다. 성희롱 행위자를 징계하는 것은 물론 징계에 앞서 피해자 의견을 충분히 듣고 반영하는 규정도 의무화했다. 

더불어 성희롱 피해가 해고 등의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피해자를 보호·구제하는 내용도 개정안에 담았다.

여기에 동참한 이용득 국회의원은 “‘차별 없는 여성일자리’를 위한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 보호 및 가해자 처벌 강화에 부합하는 국정과제의 이행이기도 하다”며 “현장의 목소리가 최대한 법안에 반영될 수 있도록 대한민국의 남녀평등 직장문화를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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