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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요 둘이서 제주도 푸른 밤 그 별 아래제주도 올레10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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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7월 24일  10:0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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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악산

간세, 리본, 화살표를 따라 올레길을 걷다

화순금모래해변에는 금이 있을까

옥황상제가 만든 산방산, 천둥소리의 송악산파도

‘떠나요. 둘이서 모든 것 훌훌 버리고 제주도 푸른 밤 그 별 아래~’ 제주도 푸른밤 가사이다. 더운 여름날 제주도 바닷물에 발을 담구고 있는 모습을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제주도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바다를 뒤로하고 도보여행인 ‘올레길 10코스’를 걷기로 했다.

친절한 올레길

‘올레’는 제주 방언으로 좁은 골목을 뜻하며, 통상 큰길에서 집의 대문까지 이어지는 좁은 길이다. 계획적인 코스 개발과 홍보를 통해서 도보여행지로 성공한 제주 올레길은 제주도의 관광사업에 크게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도보여행 열풍을 가져왔다. 올레길의 성공 이후 전국에서 도보여행 코스들이 생겨나고 있다고 한다. 올레10코스는 화순 금모래해변에서 모슬포항까지 15.5km의 거리이다. 올레길은 안내하는 표지만 따라가면 어렵지 않게 길을 찾아 갈 수 있다. 표지를 잠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간세라는 표지는 조랑말처럼 생긴 모형이다. 느릿느릿한 게으름뱅이라는 뜻인 제주어 간세다리에서 따왔다고 한다. 시작점에서 종점을 향해 정방향으로 걷는 경우, 간세 머리가 향하는 쪽이 길의 진행 방향이다.

둘째표지는 리본이다. 제주의 푸른 바다를 상징하는 파란색 리본과 제주 대표 특산품 감귤을 상징하는 주황색의 리본 두 가닥을 한데 묶어 전봇대와 나뭇가지에 매달아 놓았다. 사람의 눈높이보다 조금 높은 곳에서 한들한들 바람에 흔들려 멀리서도 눈에 잘 띄므로 리본만 잘 따라 걸어도 길을 잃을 염려가 없다.

세 번째 표지는 화살표이다. 화살표는 길바닥, 돌담, 전봇대 등에 붙어 길의 진행 방향을 알려준다. 파란색 화살표는 정방향으로 걸을 때의 진행 방향을, 주황색 화살표는 역방향으로 걸을 때의 진행 방향을 가리킨다. 제주도를 시계방향으로 걸으면 정방향이고, 시계반대 방향으로 걸으면 역방향이다.

   
▲ 송악산일제동굴진지

용천수와 바닷물이 만나다

10코스의 시작점인 화순금모래해변은 빗물이 지하로 스며든 후에 흐르다가 땅위로 솟아나는 물과 바닷물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곳으로, 길이250m, 폭 80m의 아담한 규모의 해변이다.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것처럼 바다로는 형제섬, 마라도, 가파도와 육지로는 한라산, 군산, 산방산, 송악산, 단산 등 5개의 산으로 둘러싸인 풍광이 빼어난 해수욕장이다.

금빛 모래가 많아 화순금모래해변이라 이름이 붙여졌으며 실제로 금모래 해변의 백사장 모래에는 금이 함유되어 있다고 한다. 1966년에는 한 기업체에서 광산사무소를 개소해서 금을 채굴한 사실이 있기도 하다.

   
▲ 산방산

한라산의 봉우리였던 산방산

해변에서 숲길로 들어서면 산방산 둘레길이다. 산방산은 해발 395미터의 거대한 종 모양의 용암으로 이루어졌다. 끈끈한 거대한 용암이 분화구에서 서서히 흘러나와 멀리 가지 못하고 굳으면서 축구공을 반으로 자른 것처럼 생겼다.

제주도 전설에서는 옛날 어떤 사냥꾼이 한라산에 사슴을 잡으러 갔다. 마침 사슴을 한 마리 발견하여 활을 치켜들고 쫓았는데, 사슴을 쏘려고 하다가 잘못해 활끝으로 옥황상제의 엉덩이를 건드리고 말았다. 한라산이 높은데다가 활을 높이 들어 쏘려 했기에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다. 옥황상제는 화가 나서 한라산의 봉우리를 뽑아서 서쪽으로 던졌는데, 그것이 지금의 산방산이다. 봉우리를 뽑아버린 자국은 움푹 패어져 백록담이 이루어졌다.

산방산 허리에는 산방굴사가 있는데, 그 천장 암반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은 산방산의 수호신 산방덕이의 눈물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이 산방굴사에 가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 해 많은 사람들이 산방산을 찾고 있다. 산방산에는 온난한 기후에서 자라는 구실잣밤나무, 참식나무, 생달나무, 돈나무, 까마귀쪽나무, 섬회양목 등을 비롯하여 지네발난, 풍란, 석곡 등의 암벽식물이 자라고 있다.

   
▲ 송악산에서 본 마라도와가파도

감탄이 나오는 송악산, 그리고 역사의 아픔

산방산을 뒤로 하고 이어지는 해안길은 산호빛의 바다위에 떠있는 형제섬을 끼고 돌아 송악산으로 연결된다. 송악산은 낮은 오름이지만, 동·서·남 세 면이 바닷가 쪽으로 둥글게 툭 비어져 나온 10~14m의 기암절벽이다.

송악산은 ‘절울이’, 즉 제주말로 물결이 운다는 뜻의 이름을 갖고 있는 산인데, 바다 물결이 산허리 절벽에 부딪쳐 천둥같이 울린다는 뜻이다. 송악산 외부 능선 해안에 있는 동굴진지는 당시 일본군의 군사시설로서 1943~1945년 사이에 만들어졌다. 송악산에는 이처럼 크고 작은 진지동굴이 60여개소나 되며, 이 진지동굴은 태평양전쟁 말기, 수세에 몰린 일본이 제주도를 저항 기지로 삼고자 했던 증거를 보여주는 시설물 가운데 하나로서, 주변에는 섯알오름 고사포 동굴진지와 해안동굴 진지, 알뜨르비행장, 비행기격납고, 지하벙커, 이교동 군사시설, 모슬봉 군사시설 등이 있다.

   
▲ 섯알오름 양민학살터

섯알오름 양민학살터

이곳은 일제강점기때 일본군이 제주도민을 ‘강제동원’해 구축한 제주도내 최대의 탄약고였으며, 해방 이후 미군에 의해서 폭파된 곳이다. 1948~1949년 1만5000명이상의 양민이 군경토벌대에 의해서 학살된 ‘제주4·3사건’이 진정국면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군과 경찰의 ‘예비검속’으로 약 1000명이 넘는 제주인들은 한 밤중에 무참히 총살, 이름모를 산야에 암매장되거나 깊은 바다에 수장됐다. 현재까지 섯알오름만이 당시의 비참했던 상황을 보여줄 수 있는 제주도내의 유일한 학살터이다. 이러한 아픔들이 제주도민들이 외부인들을 경계할 수 밖에 없게 만든 듯하다.

   
▲ 알뜨르비행장

알뜨르 비행장

알뜨르 비행장은 제주도민들이 대를 이어 농사를 짓던 농지 겸 목초지였다. 일제 강점기에는모슬포 주민들을 동원하여 1920년대부터 1930년대 중반까지 군용 비행장으로 건설했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면서 본격적으로 전초 기지로 쓰이기 시작하면서, 약 700km 떨어진 중국의 도시인 난징을 폭격하기 위해 오무라 해군 항공대의 많은 전투기가 출격하였다. 해방후 2006년 11월 29일, 대한민국 근대 문화유산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올레길에서는 빠르게 걷지 않아도 된다. 제주도 푸른바다 앞에서 멈추고, 바다의 속삼임을 들어보자. 감귤나무 앞에서 향을 맡아본다. 게으른 걸음으로 돌담길과 사람들을 구경한다. 올레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웃어본다.

최상형 레저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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