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다니엘 블레이크] 누구를 위한 나라인가.
[나, 다니엘 블레이크] 누구를 위한 나라인가.
  • 신섬미 기자
  • 승인 2017.03.06 14: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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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리뷰

▲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2016년 칸영화제 경쟁부문에서 막강한 라인업들을 제치고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영화를 만든 켄 로치 감독은 50여 년의 시간 동안 한결같이 영국을 포함한 전세계의 사회적 약자, 소외계층, 이주민, 노동자 등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이번 영화 역시 마땅히 인간으로써 누려야할 복지를 구걸해야만 하는, 효율성에 가린 복지제도의 어두운면을 보여주면서 관객들의 찬사를 받았다.

영화는 블랙 화면에서 주인공 다니엘 블레이크(데이브 존스)와 의료수당 지급 담당자의 길고도 답답한 대화로 시작된다. 평생을 성실하게 목수로 살아온 다니엘은 심장 쇼크로 근무 중 위기를 겪은 적이 있다. 담당 주치의는 다니엘에게 지병인 심장병이 악화됐으니 당분간 일을 하지 못하도록 했다. 때문에 나라에서 나오는 의료수당을 지급받기 위해 담당자에게 심사를 받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담당자는 다니엘의 건강상태와는 상관없는 형식적인 질문들만 늘어놓는다. 다니엘은 질문에 항변해보지만 심사를 통과해야 의료수당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대답을 마무리 짓고 심사를 마친다.
 
며칠 후 다니엘에게 돌아온 결과는 심사에서 탈락했다는 소식. 돈을 벌기 위해서 다시 일을 해야 하지만 주치의는 여전히 일을 하지 못하게 한다. 다니엘이 할 수 있는 것은 심사 결과에 항소하는 것인데 그마저도 쉽지 않다. 항소를 위해 기관에 전화를 걸지만 1시간 이상은 기본으로 연결대기음만 들으며 기다려야했다. 통화가 되더라도 상담원은 항소에 관한 복잡한 절차만을 반복해서 읊어줄 뿐이다. 결국 답답한 마음에 직접 구직센터를 찾아가지만 그곳에서도 원칙을 강조하며 기계적으로 매뉴얼만 읊어줄뿐 실질적인 도움은 주지 않는다. 더군다나 소통이 되지 않는 불친절한 직원들은 오히려 화를 부추기고 좌절감만 안겨 줄뿐이다.
 
미니멀한 프레임 속 다니엘의 모습은 단순한 일상을 지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경제력을 잃은 늙은 노동자가 부조리한 복지체제에 부딪히며 절박해지는 현실의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어쩌면 나의 할아버지이자 가까운 미래의 아버지이자 그리고 먼 미래의 우리가 고스란히 담긴 모습이 아닐까. 곧 이 문제는 영국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닌 전 세계가 겪고 있는 문제라는 것을 깨닫는다.
 
다소 까칠하고 냉정해 보이지만 실은 성실하고 마음 따뜻한 다니엘. 그는 한 나라의 국민으로써 평생을 올곧게 살아온 사람이었다. 하지만 몸이 아파 일을 할 수 없게 됐을 때 그에게 돌아온 것은 그를 품어주는 따뜻한 사회가 아닌 비참함과 괴로움만을 안겨주는 현실이었다. 
 
센터에서는 의료수당 지급이 중지된 상태에서 항소에 시간이 오래 걸리니 실업수당을 신청할 것을 권유한다. 하지만 당장 생존이 절박한 다니엘에게 실업수당이라는 국가의 제도적 도움을 받는다는 것은 철저하게 자존심 짓밟히는 일이었다. 당연한 권리인 실업수당을 받기 위해서 자신이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 인간인지를 증명해야했고 그 과정에서 끊임없이 모욕적인 상황을 겪어야 했다. 나라의 구성원을 보살피고 돌봐주기 위해 만들어진 복지 혜택이지만 그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내 가난을 설명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증명하고 사정해야했다. 다니엘은 그러기엔 너무 강직하고 진실하고 정직한 사람이었다.
 
“사람이 자존심을 잃으면 다 잃은 거요” 특별한 삶을 꿈꾸는 것이 아니다. 그저 인간답게 살기 위한 것뿐인데 이토록 처절해야하는 지. 하지만 벼랑 끝으로 내몰린 상황에서도 다니엘은 조용하지만 강렬하게 “나는 다니엘 블레이크다”라고 외친다. 그는 끝까지 자존감을 버리지 않고 세상을 향해 작은 온기를 불어 넣어준다.
 
영화를 보며 우리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사회를 구성하는 우리 모두는 평등하게 존엄함을 가진 존재다. 경제력을 잃고 낮은 곳에 있는 구성원은 패배자, 경제력을 가진 힘 있는 사람들은 승리자로 나눠 그들을 차별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부터 달라져야한다. 다니엘은 실업센터에서 우연히 만난 미혼모인 케이티(헤일리 스콰이어)와 그녀의 두 아이에게 조건 없는 온정을 베풀며 인간의 존엄성을 증명한다. 자식을 위해 몸을 파는 케이티를 보며 다니엘은 뜨거운 눈물을 쏟아낸다. 비록 사회에서 소외당하는 이들이지만 서로를 얼마나 생각하고 의지하는 지, 그리고 그 연대는 또 얼마나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지를 보여준다. 무엇보다 남녀의 사랑이 아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진정한 사랑을 보며 그간 우리가 얼마나 타인을 경계하며 색안경을 끼고 차갑게 살아 왔는 지를 돌아보고 반성했다.
 
영화에서 절대악의 존재는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 내내 마주하는 서늘한 분위기 속 냉혹한 현실은 절대악의 등장보다 더 소름끼치고 두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영화를 보는 순간부터 영화는 더 이상 영화가 아니다. 불합리한 사회 제도에도 끝내 사람이기를 포기하지 않았던 보통 사람의 투쟁에 스스로를 대입해보면서 가슴 깊은 곳에서 차오르는 뜨거운 울림과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한 줄 평] 영화는 더이상 영화가 아니다 (별점 ★★★★★)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http://movi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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