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 아름다움에 매혹되고 사랑에 취하다

신섬미 / 기사승인 : 2016-07-06 11: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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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가씨' 리뷰

▲ 영화 '아가씨'
7년 만에 한국 영화에 복귀한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가 주연배우 김민희의 불륜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누적관객 400만명을 돌파하며 장기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소설 ‘핑거스미스’를 원작으로 한 영화는 ‘제69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공식 초청됐고 류성희 미술감독이 한국 최초로 벌칸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영화는 개봉 전부터 동성애 소재, 수위 높은 노출, 정사신, 작품의 시대적 배경 등이 논란의 중심에 서면서 뜨거운 화제를 일으켰다. 개봉 후 관객들의 평가는 확실한 호불호로 갈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꾸준한 관객몰이로 흥행이라는 토끼는 제대로 잡았다는 것이다.


1930년대 일제강점기 조선, 일본 귀족 가문의 아가씨 히데코(김민희)는 태어나자마자 하나뿐인 엄마를 잃고 자신을 돌봐주던 이모마저 자살로 잃은 후 막대한 재산을 상속 받는다. 천지 간 아무도 없는 고아가 된 히데코는 후견인인 이모부(조진웅)의 보호라는 이름 아래 엄격한 감시 속에 지낸다. 이모부는 히데코가 상속받은 처가의 거액 재산을 가지기 위해 그녀와 정혼한다.
히데코가 하루 종일 하는 일이라고는 시낭독을 준비하고 시낭독을 하는 것 뿐.. 이모부의 강요에 의해 이뤄지는 시낭독에는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다. 온전히 다 보여주는 것보다 자신만의 상상 속에서 성적 판타지를 펼칠 때 더 쾌락을 즐기는 남자들. 히데코는 시낭송을 통해 그들의 야릇한 상상에 소재거리를 던져주는 역할을 한다. 그것은 19금 야설을 읽어주는 일. 영화는 실감나게 야설을 읽어주는 히데코와 그녀를 바라보며 성적 짜릿함을 느끼는 남자들의 변태성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남자들의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부분들이 보여지는데 그 중심에는 이모부가 있다.
그런 아가씨에게 하녀 숙희(김태리)가 나타난다. 거액의 상속녀 히데코의 소문을 들은 사기꾼 백작(하정우)이 그녀의 재산을 가로챌 목적으로 소매치기 고아 숙희(김태리)와 계획을 세운 것이다. 유명한 여도둑의 딸로 태어나 장물아비 손에서 자란 숙희는 히데코의 하녀로 저택에 들어가 그녀를 유혹해 백작을 사랑하게 만들도록 하는 역할을 맡았다. 숙희와 백작은 저택으로 들어가 자신만의 방식대로 히데코의 마음을 흔들기 시작한다.
영화는 총 3부로 나눠진다. 1부는 숙희의 시점에서 백작과 함께 히데코를 속이는 내용, 2부는 히데코의 시점에서 백작과 함께 숙희를 속이는 내용, 마지막으로 3부는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면서 히데코와 숙희가 백작을 속이고 탈출하는 내용이다. “내가 걱정돼? 난 니가 더 걱정돼“ 영화 속 히데코가 숙희에게 했던 대사다. 서로의 돈과 마음을 뺏기 위해 속고 속이는 매혹적인 이야기가 영화 내내 펼쳐진다.
“염병, 이쁘면 이쁘다고 미리 말을 해줘야 할 거 아니야. 사람 당황스럽게시리” 하녀로 들어간 숙희가 처음으로 히데코를 마주한 날 넋이 나간 얼굴로 중얼거린다. 숙희는 아마 아가씨를 처음 본 순간부터 사랑에 빠지지 않았나 싶다. 소설에서도 인상 깊게 묘사된 골무로 이를 갈아주는 장면은 영화에서도 단연 최고의 장면으로 꼽혔다. 샤워 중이던 히데코가 이가 날카로워 잇몸을 찌른다고 말하자 숙희가 골무를 끼고 와 손가락으로 직접 그녀의 이를 문질러준다. 클로즈업 되는 히데코의 표정만으로도 느껴지는 묘한 분위기는 보고 있는 관객들까지 긴장하게 만든다.
한국에서 미장센으로는 단연 최고로 뽑히는 박찬욱 감독답게 눈앞에 펼쳐지는 장면 장면의 시각적 요소들은 완벽했다. 영화가 시작되는 순간 박찬욱만의 세계에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다. 뱀, 복숭아, 방울, 단추, 담배, 문어 등 배치된 소품 하나하나에 영화의 의미가 숨겨져 있다. 영화를 보며 소품들에 감춰진 의미를 찾아보는 것도 재미를 더해준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이모부의 은밀한 서재와 그곳을 지키는 뱀. 여기서 뱀은 남자의 성기를 상징하며 남성의 사악한 힘, 위엄, 권력, 지배 등을 뜻한다. 사랑을 확인한 숙회와 히데코는 저택을 떠나기로 결심한 날 서재에 잠시 들린다. 숙희는 뒤늦게 빼곡이 쌓인 책들이 모두 야설임을 알게 되고 히데코에게 그동안 이런 걸 읽었던 거냐며 분노한다. 히데코가 서재에서 머뭇거리는 동안 숙희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책들을 찢고 서재를 엉망으로 만들어 버리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 역시 묘한 쾌감이 느껴졌다.
남성의 상징인 뱀과 서재를 망가뜨리는 것은 위선, 폭력, 강압적인 남성의 중심이었던 이모부를 철저히 무너뜨린 것이다. 비하인드 스토리지만 원래 이 장면은 히데코가 주체적으로 나서는 것인데 현장에서 숙희로 바꼈다고. 감독은 숙희의 행동에 대해 결정적인 순간에는 꼭 남성이 나타나 도움을 주는 상황이나 관습을 비튼 것이라고 했다. 역할이 바뀐 것이 오히려 영화를 더 살린 것 같다. 이어 나오는 히데코의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나의 타마코, 나의 숙희‘ 라는 감미로운 대사와 너무도 잘 어울리는 장면이었다.
무엇보다 신인 김태리와 김민희 연기는 숙희와 히데코 그 자체였다. 특히 김민희 같은 경우에는 같은 여자가 봐도 너무 아름다워 넋을 잃게 만들었다. 김민희와 김태리를 보고 있자니 정말 사랑에 빠진 연인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극에 더 몰입할 수 있었다. 여기에 조진웅, 하정우의 능숙한 연기까지도 한몫해 영화의 완성도를 더해줬다.
영화는 내내 어두침침한 분위기를 이어가지만 히데코와 숙희가 손을 잡고 저택을 탈출하는 순간 멀리서 밝은 햇빛이 비친다. 자유의 몸이 되어 배를 타고 떠나는 순간에도 햇빛이 등장한다. 어두웠던 그녀의 삶에 숙희가 함께함으로써 미래가 밝아진다는 걸 암시한다.
단순히 수위 높은 정사신, 노출신을 기대하고 봤다면 영화는 실망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열린 마음으로 가볍게 본다면 영화 곳곳에 감초처럼 튀어나오는 블랙코미디와 함께 재밌는 시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 줄 평] 이제껏 내가 씻기고 입힌 것들 중에 이렇게 이쁜 것이 있었나 (별점 ★★★★☆)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http://movie.naver.com)>
신섬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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