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촌항에서는 누구나 시인이 된다
전촌항에서는 누구나 시인이 된다
  • 조미정 기자
  • 승인 2016.02.03 10: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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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동해를 가다 - 전촌항&감포 깍지길 8구간

 

누군가를 기다리는 풍경 동해 전촌항에서는 누구나 시인이 된다. 그리운 이름을 마음껏 불러보는건 어떨까.

혹독한 겨울을 관통하고 있다. 연일 맹추위가 기록을 갱신하고 있지만 우리의 여행은 끝나지 않았다. 겨울, 동해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뻥 뚫리는 자유와 방랑객의 고독을 가득 품을 수 있다.
우린 그 날선 차가움에 마음을 태운다. 그러면 뼈를 쑤시는 에인 칼바람이 어느새 저만치 비켜선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그윽한 풍경, 동해 전촌항
깊고 푸른 바다를 감싸는 ‘감포 깍지길 8구간’
여행자의 고독, ‘이견대’서 바라본 문무대왕릉

#작은 항구에 숨은 야생미 물씬
경주 전촌항에 첫 발을 내딛었다. 배 한 척이 오도카니 누군가를 기다리는 풍경이 있는 곳, 전촌항은 감포에 꽁꽁 숨어있어서 이제야 발을 들여놓게 됐다. 작은 항구에는 어부들의 포식거리가 가득하다. 항구의 야생미는 어느 큰 항구의 그것에 못지않다.
전촌항에서 출발하는 해안산책길은 ‘감포 깍지길’ 8구간이다. 동해의 바다는 어디에서 바라보더라도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저 깊고 푸른 것이 그윽하기 이를 데 없다.

▲ 작은 전촌항에서는 왠지모를 야생미가 느껴진다.

감포 깍지길이 개통된 것은 2012년도이다. 감포항을 중심으로 감포 지역의 풍부한 해안관광자원과 수려한 산천, 유서 깊은 문화와 정감 어린 마을 등을 ‘길’이라는 주제로 엮어 감포읍에서 8개 구간 80.7km에 이르는 해안탐방 둘레길을 조성했다.
우리가 도착한 날, 8구간 나무 데크의 페인트칠 작업을 마무리하는 분들이 있었다. 여전히 여행객들을 맞기 위해 바쁜 치장 중이다. 감포 깍지길 8구간은 ‘배를 타고 도는 바닷길’이라는 어여쁜 이름이 붙여졌다. 조용하고 그윽한 이 길은 겨울, 차분한 마음으로 누군가를 그리워하기에 제격이다. 전촌항의 고즈넉한 쓸쓸함이 너무나 인상적이다. 바다를 바라보는 것만으로 누구나 시인이 된다. 전촌항의 파도는 사람이 그리웠다. 오랜 시간 그렇게 외롭게 울고 있었다. 전촌항의 항구는 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리거나 또 누군가를 애타게 그리워하며 겨울을 버텨내는 중이다.

#이견대에서 느낀 문무대왕릉의 고독
전촌항의 바로 건너편에는 ‘용산대게 참가자미’라는 맛집이 숨어있다. 대게면 대게, 회면 회, 싱싱하고 맛있는 해산물을 원 없이 먹을 수 있다. 횟감의 식감은 매우 뛰어나 다른 집의 회들이 싱겁게 느껴지고 대게는 알이 가득 찼다. 겨울에는 제대로 된 먹방이 필수다. 추운 여행지에서 배가 부른 것만큼 행복한 일은 없다.
포만감이 가득하다면 울산 쪽으로 차를 돌려보는 건 어떨까. 얼마 지나지 않아 동해를 바라보고 있는 낯선 정자를 만나게 된다. 이견대라고 불린다. 신라 문무왕의 혼이 깃든 문무대왕릉(대왕암)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

▲ 이견대에서 바라본 문무대왕릉은 거센 파도에도 상관없이 항상 맑고 잔잔하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신문왕이 681년에 즉위해 호국용이 된 아버지 문무왕을 위해 감은사를 창건하고, 용이 된 아버지가 다닐 수 있도록 법랑 밑에 동해를 향하게 구멍을 하나 뚫었다. 용이 절에 들어와서 돌아다니게 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뒤에 용이 나타난 곳이 바로 이곳 이견대라고 한다. 그 다음해에 감은사 앞바다에 작은 산이 떠내려 와 신문왕이 이견대로 행차해 그 산을 바라봤으며, 며칠 뒤에 신문왕이 그 산으로 들어가 용을 만나 검은 옥대를 받았다. 그리고 신하를 시켜 산 위에 있던 대나무를 배도록 했는데, 그 대나무로 만든 피리가 바로 세상을 구하고 평화롭게 한다는 그 유명한 만파식적(萬波息笛)이다.

이견대에서 문무대왕릉을 바라보는 것은 경이롭다. 대왕암 바위 근처는 거센 파도에 상관없이 항상 맑고 잔잔하다. 사실 문무대왕의 시신을 화장한 납골을 뿌린 산골처로 알려져 주변 어부들은 이곳을 신성하게 여겨 근처에도 잘 가지 않았다고 한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문무왕은 평소 이렇게 유언했다. “내가 죽은 뒤에 용이 되어 불법을 받들고 나라의 평화를 지킬 터이니 나의 유해를 동해에 장사 지내라” 문무왕은 그렇게 고독하게 동해바다를 지키고 있었다.

▲ 동해 바다는 어디에서 보더라도 깊고 푸르며 그윽하다.

#마음을 치는 동해의 바람과 파도
주상절리 쪽으로 조금만 이동하면 해변을 낀 멋진 카페들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주상절리 카페베네는 바다조망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어 그 이름값을 톡톡히 해내는 듯하다. 지중해는 아니지만 블루로 가득한 이곳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어둑어둑해진 카페의 야경과 바다의 황홀한 분위기가 합쳐져 어느 누구도 그곳을 쉽게 떠나겠다고 말하는 이가 없었다. 달빛처럼 형형한 마음이 커피 한 잔에 녹았다면 동해를 여행하는 방랑객은 더 이상 욕심이 없다. 누군가는 겨울에 오히려 동해바다를 찾는다고 했다. 바람과 추위에 서린 파도가 더없이 마음을 치기 때문이다. 그리움에 목 놓아 울어도 아무도 뭐라 할 사람이 없다. 파도를 향해 소리쳐도 누구하나 간섭하지 않는다. 바다는 그렇게 그 자리에서 변함없이 여행객들을 맞고 또 떠나보낸다. 그렇게 동해를 거니는 것도 혹독한 겨울을 버티는 또 하나의 방법이다.

글·사진=조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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